▲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를 개정해 노동자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인권위는 28일 오전 38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노조법에 대한 의견표명 안건을 이같이 의결했다. 토론 중 상임위원 4명 중 3명이 찬성의견을, 1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상임위 과정에서 제기된 노조법 개정에 대한 소수의견을 포함해 조만간 의견표명 결정문을 공지할 예정이다. 인권위 결정문에 소수의견이 포함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ILO 기본협약 부합하게 노조법 개정 필요
노동자·사용자 개념 확대, 손배·가압류 제한

인권위는 쟁의행위에 대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 및 가압류가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위축한다고 봤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심각한 경제적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정신적 우울로 인한 자살 같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경제·사회적 환경과 노무제공방식 변화를 반영하고 우리나라가 비준해 발효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에 부합하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수고용직과 플랫폼종사자를 노조법 2조1호 근로자 규정에 포함하고,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이나 노조활동에 관해 실질적 지배·영향력이 있는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같은 법 2조2호를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같은 사안도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노조법 2조5호의 노동쟁의 정의규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냈다.

손배·가압류도 제한하라고 했다. 인권위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 행사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노동자나 노조에 손배·가압류를 신청할 수 없도록 하고 노동자 개인이나 신원보증인에 대한 배상청구나 가압류 신청도 할 수 없도록 법을 고치라고 했다.

윤 캠프 출신 이충삼 위원 “불법 조장법”
“하청노동자에게 인심 쓰다 나라 망해”

이런 의견표명 안건을 두고 상임위원 간 찬성(3명)과 반대(1명)가 갈렸다. 반대의견을 낸 이충삼 상임위원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두고 “불법을 조장하는 법”이라며 “국회가 의결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접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인권위는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입장이 아니어야 한다”며 “노조만 살피지 말고 노조와 국민 전체를 함께 살피라”고 했다. 판사출신인 그는 윤석열 대통령후보 선거캠프 사법개혁위원장으로 활동한 국민의힘 추천 위원이다.

이충삼 상임위원은 “법률에서 노동자 개념을 변경해 설정하는 것은 지난하므로 법원에 맡기면 법률과 노사관계의 근본체계를 흔들지 않으면서 타당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자 개념 확대도 반대했다. 그는 “(의견표명안은)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동자 임금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거부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며 “하청노동자에 인심을 쓰다가 적자 폭을 키워 공적자금을 더 투입하라는 것인데 이렇게 법을 개악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노조는 물론 조합원 개인에게 하는 손배·가압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상임위원은 “범죄조직이 범죄를 저지르면 조직 구성원의 책임은 묻지 않느냐”며 “헌법이 보장한 재산권 및 영업과 기업의 자유를 침해해 손해를 입힌 불법행위 책임을 면하거나 가압류 신청을 금지한다면 국회가 불법파업 조장법을 입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 안 바꾸면 헌법 6조 위반”
“개인 손배소 제한이 핵심, 쌍용차 잊었나”

이충삼 상임위원 주장에 대해 다른 상임위원들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박찬운 상임위원은 노조법상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을 현행처럼 존치하는 것은 국제규범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비준·발효해 국내법적 효력을 지닌 ILO 87·98호 협약에 따른 이른바 ‘워커(worker)’의 개념은 국내 노조법상 노동자 개념보다 넓다”며 “현행법을 존치하면 국제법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한 헌법 6조 위반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고 지적했다. 사용자 개념 확대에 대해서는 “노동자 개념 확대의 동전 앞뒷면 같은 문제”라며 “이미 인권위가 수차례 권고를 관련기관에 했으므로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손배·가압류 제한에 대해서는 쟁의행위에 따른 재산권 침해 주장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재산권을 강조한 18~19세기를 반성하면서 20세기에 정립된 것이 현재의 노동법 체계고, 우리나라는 이를 헌법에 수용했다”며 “손배·가압류를 제한하자는 논의에서 재산권 침해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지엽적이고 법사상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의견표명 결정문에서는 다소 유연한 태도를 주문했다. 박 상임위원은 “쟁의행위 과정의 개인의 일탈에 따른 폭력행위까지 손배·가압류 제한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단서조항을 달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 제한에는 단호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쟁의행위 이후 개인에 대한 손배소로 수많은 조합원이 자살한 쌍용자동차 파업에서 보듯 개인에 대한 손배·가압류가 사실상 의견표명의 핵심”이라며 “노조의 지시에 따른 파업 참여를 개인에게 청구하는 관행을 법률에서 근원적으로 단절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협소한 노동자·사용자 개념에 따른 광범위한 불법 쟁의행위 논란과 이에 파생한 손배·가압류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 같은 사회적 중대한 문제에 인권위가 답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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