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2. 8. 선고 2018가합543661 판결

1. 사건의 개요

(1) MB정부 시절, 국정원을 중심으로 유관기관 간 협업이 이뤄지며 이른바 ‘노조파괴 공작’이 진행됐다.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은 ‘민주노총,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를 이른바 ‘3대 종북좌파 세력’으로 분류하는 등 노동조합 조직을 국가의 적으로 삼았고, 국정원 조직을 동원해 지속적인 노동조합 와해 공작을 벌였다. 국정원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피해를 입은 주요 노동조합(민주노총·전교조·전국공무원노조·금속노조·서울교통공사노조)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각 원고들이 주장한 불법행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2) [원고 민주노총] MB정부 당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 민주노총을 그야말로 국가의 주적으로 삼았다. 국정원은 ‘민주노총 무력화’라는 분명한 목표와 계획을 수립한 후, ① 하부조직 탈퇴 유도(국정원은 KT노조 등 민주노총 산하 21개의 하부조직 탈퇴를 유도·개입했다) ② 선거 및 총회 결의 과정에 대한 개입 ③ 사업장 내 조합활동에 대한 사찰 및 방해 ④ 민주노총 전체 차원에서의 조합활동(대중집회 등)에 대한 사찰 및 방해(여론전 등) ⑤ 신규노조 설립 방해 ⑥ 제3노총 설립지원을 통한 제압 시도 등의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3) [원고 전교조] 국정원에게 원고 전교조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정리해야 할 대상(원세훈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 피고 대한민국은 ① 보수단체에게 2억원에 가까운 금전적 대가를 교부하며, 전교조를 비난하는 어용집회를 할 것을 교사했으며 ② 전교조 소속 6만명 조합원에게 전교조를 비난하는 서한을 보내 정신적 고통을 주며, 심지어는 국정원 심리전단 온라인팀을 전교조 탈퇴 교사로 위장시켜 허위의 영상을 제작한 뒤 배포했다. ③ 무엇보다 국정원은 ‘전교조 자체의 불법단체화’라는 계획과 목표하에 법외노조 통보 처분 1차 시정명령에 개입했으며, 그 이후에도 전교조를 지속적으로 사찰하고 조합활동을 방해했다.

(4) [원고 전국공무원노조] 국정원에게 원고 전국공무원노조 역시 원고 민주노총·전교조와 더불어 ‘척살해야 할 내부의 적’이었다(이른바 3대 종북좌파 세력). 피고 대한민국은 ① 원고 전국공무원노조가 출범할 무렵부터 총회 결의 과정에 개입하는 등 조합활동을 방해했으며 ② 노동조합 출범 이후에도 조합활동의 내용을 사찰하며 여론전 등의 방법으로 조합활동을 방해했다. ③ 나아가 원고 전국공무원노조의 주요 간부, 초대 위원장 양성윤에 대한 징계 절차에도 개입했다.

(5) [원고 금속노조] 국정원은 원고 금속노조에 대해서도 노조파괴 공작을 전개했다. ①금속노조 산하 하부조직(지부·지회)의 탈퇴를 유도했으며 ② 사업장 내 조합활동을 상시적으로 방해하고 ③ 금속노조가 주최하는 대중집회의 계획을 사찰하고 여론전 등의 방식으로 방해하려 했다. ④ 또한 신규 하부조직의 설립을 방해하기도 했다.

(6) [원고 서울교통공사노조] 원고 서울교통공사노조는 국정원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인해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된 대표적인 하부조직이었다. 국정원은 원고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결의 전후에 조합활동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사찰하며 방해하고자 했다. 심지어 서울교통공사노조 등의 민주노총 탈퇴 결의를 원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로 하여금 위법한 행정해석을 작출하게 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가. 원고들이 주장한 불법행위 사실 대부분 인정

대상판결은 위와 같이 원고들이 주장한 불법행위의 내용을 대부분 인정했다. 위 원고들이 주장한 불법행위의 내용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주요 간부의 형사사건 기록 혹은 국정원에 정보공개 청구한 내용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입증한 것으로서, 대한민국 역시 변론 과정에서 구체적인 사실관계 자체를 다투지는 않았다. 국정원 감찰 결과, 검찰 수사 결과, 정보공개 청구 결과 등을 통해 확인되는 ‘노조파괴 공작’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나. 노조파괴 공작의 위법성 인정

대상 판결은 위와 같은 일련의 노조파괴 공작 내용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일탈한 불법행위는 구성한다고 봤다. 특히 이는 국가가 주도한 ‘부당노동행위’와 유사한 불법행위에 해당하며, 특히 국가가 부담하는 헌법상 단결권 보호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성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원고들은 대한민국의 노조파괴 공작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제한받은 상황이며, 노동조합이 입은 단결권 침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상당하다며 위자료 지급 의무를 선언했다. 구체적으로 원고 민주노총에게 1억원, 원고 전교조에게 7천만원, 원고 전국공무원노조에게 5천만원, 원고 금속노조에게 3천만원, 원고 서울교통공사노조에게 1천만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 배척

한편 대상판결은 대한민국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했다. 대한민국은 국가배상 청구에 관한 장기 소멸시효인 5년의 시효 완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법원은 국정원이 주도한 이 사건 불법행위의 특성상 은밀하게 이뤄진 사정이 존재해, 외부에 있는 원고들로서는 국정원에 의한 불법행위의 내용과 방식을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봤다. 결국 원세훈 등 전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형사판결 선고 이후 국가배상청구권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고 봐야 하므로, 소멸시효가 도과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3. 대상판결의 의의

가. 국가권력에 의한 노동조합 파괴 공작이 불법행위에 해당함을 선언했다.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이란 단순히 사용자로부터의 자주적 단결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주적 단결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단결권의 헌법적 의미에 대해 “근로자단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의 창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적 균형을 이뤄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 간의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려는 데 있다”라고 판시했다(헌법재판소 1998. 2. 27. 선고 94헌바13 결정). 이와 같은 단결권의 헌법적 의미를 고려할 경우 국가기관이 주도한 노동조합 파괴 공작은 당연히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MB정부 시절 국가는 노동조합을 그야말로 국가의 적으로 삼았다. 그런데 국가는 헌법 10조2항에 따라 기본권 보호 의무를 부담한다. 요컨대 국가는 노동조합을 국가의 적으로 삼아 탄압할 것이 아니라, 기본권 보호 의무에 따라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존중하고 최대한 보장할 헌법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MB정부 시절 이뤄진 노동조합 파괴 공작은 이와 같은 국가의 기본권(단결권) 보호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행위인 바, 대상판결은 이와 같은 노조파괴 공작의 위법성을 분명히 선언한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나. 소멸시효 주장을 통한 면책 시도를 제한한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또한 대상판결은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통한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완전 면책 시도를 차단한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 그간 대한민국은 국가배상책임 소송에서 장기 소멸시효 항변을 통해 완전 면책 시도를 해 왔다. 특히 국가배상 청구권의 장기 시효는 일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의 장기 시효보다 짧은 관계로(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 장기 시효의 경우 10년, 국가배상 청구권의 장기 시효는 5년),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한 면책은 일반적인 불법행위 사건보다 용이하게 이뤄졌다.

민사상 소멸시효 제도는 분쟁의 조속한 해결과 법적 안정성을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기본권 보호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의 불법행위와 관련된 소송에서도 소멸시효 법리를 온전히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상당했다. 대법원은 과거부터 국가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서는 소멸시효 항변에 대해 권리남용 여부를 판단해 국가의 항변을 적절히 제한해 왔다(대법원 2011. 10. 13. 선고 2011다36091 판결). 특히 국가기관의 기본권 침해 범죄행위에 대해서까지 소멸시효를 주장해 완전 면책을 도모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존재했다(서울고등법원 2019. 5. 22. 선고 2018나2068767 판결)

이 사건에서도 대상판결은 소멸시효에 대한 예외 법리를 적절히 활용해 국가의 항변을 배척했다. 특히 국정원이 주도한 불법행위의 경우 국정원 조직의 특수성에 따라 불법행위의 주체·방식·내용 등을 외부에서 정확히 인지하기 어려운 사정이 존재하는 바, 이를 들어 장기 시효 항변을 적절히 배척한 것은 타당한 판시라고 볼 수 있다.

4. 결론

이 사건은 사실 법리 그 자체보다, MB 시절 이뤄진 노조파괴 공작의 실질이 법원 판결을 통해 낯낯히 밝혀졌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의를 갖는다. 담당 변호사로서 사건 기록을 몇 번이나 검토해도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국민이 아니었다. 단결권 보호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가 노동조합을 국가의 적으로 삼아 지속적인 와해공작을 단행한 것은 민주사회에서. 아니 문명사회에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판결을 기회로 국가가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한번 성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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