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근로계약서도 없이 8년간 일한 배관공을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은 정당한 이유 없는 부당해고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회사는 일용직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근로관계가 계속 유지됐고 회사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며 근로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8년간 일용직 신고, 갑자기 일감 ‘뚝’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지난 23일 건설업체 S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3년 6월 회사와 구두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배관공으로 근무했다. 매달 20일 이상 근무하며 근로일수에 일당을 곱하는 식으로 급여를 받았다. 회사는 고용보험 가입신고를 하면서 A씨를 ‘일용근로자’로 신고했다.

그런데 회사가 2019년 수주한 대구 엑스코 전시장 공사현장에 투입되고 나서 지난해 4월 이후 일감이 끊겼다. 사측이 A씨의 건강보험 자격상실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반면 엑스코 공사현장에서 함께 근무한 노동자 중 현장소장을 포함한 5명은 부산과 대구의 다른 현장에서 계속 작업을 이어 갔다. A씨는 그해 5월 충주 공사현장에서 하루 일한 것이 마지막 근무였다.

A씨는 노동위원회 문을 두드렸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A씨가 일용직에 해당해 계약기간 만료에 따라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며 A씨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중노위는 A씨를 상용직으로 보면서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는 해고에 해당하고, 서면통지 의무를 위반했다며 초심을 뒤집었다.

회사는 이에 불복해 올해 3월 소송을 냈다. 사측은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일용직으로 수시채용해 공사현장에 투입했고, A씨도 일용직으로 근무했으므로 2021년 4월 엑스코 공사 종료와 함께 근로관계가 자동 종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공사현장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지만 A씨가 거절했으므로 해고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법원 “일자리 없다는 이유, 인정 안 돼”

법원은 중노위 판정을 존중했다. A씨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는 해고라고 판단했다. 구두 근로계약 체결 당시 근로기간에 대해 별도로 약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계약관계가 유지된 8년 동안 A씨의 근로제공이 단절됐다거나 다른 회사에서 근무한 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며 “A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계속 근무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를 가지게 됐다”고 판시했다.

‘전속성’도 인정했다. 공사가 종료되면 A씨를 다른 공사현장에 투입하고, 투입할 공사현장이 없으면 창고 정리를 맡긴 부분이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는 회사에 전속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면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일용근로자’로 신고한 부분도 사용자가 임의로 하는 것이므로 일용근로자로 단정해선 안 된다고 봤다.

“일을 그만두라고 한 적 없다”는 사측 주장도 A씨와 현장소장의 통화를 토대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근로관계 종료 무렵 현장소장에게 “회사가 일이 없다고 하면서 나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됐다”며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다른 공사현장에 일자리가 있었는데도 일을 주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재판부는 사측이 A씨에게 다른 공사현장의 근무를 제안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회사의 다른 공사현장이 다수 존재했고, 엑스코 공사현장의 노동자들이 계속 다른 공사현장에 투입된 부분을 볼 때 수주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A씨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부당해고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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