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이재진(53·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이 재선했다. 이 위원장은 노조와 사무금융연맹 선거에 동시 출마한 3년 전과 달리 올해는 노조 선거에만 출마해 단선으로 선거를 치렀다. 3년 전 그가 내건 공약인 산별노조 전환을 완수해 연맹이 올해를 끝으로 해산하기로 하면서 홀가분한 선거가 됐다. 그의 앞선 3년이 코로나19가 관통한 시절이라면 앞으로의 3년은 포스트 코로나 경제위기와 보수정권의 3년이 될 전망이다. 일반사무와 2금융권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노조의 3년은 어떨까. <매일노동뉴스>가 8일 오후 NH투자증권지부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향후 산별노조 방향성 수립 책임감

- 재선에 성공하셨다. 소회가 있다면.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 지난 3년간 많이 소진돼 출마를 고민한 시기도 있었지만 연맹 해산 같은 굵직한 결정 이후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산별노조 담론과 의제 같은 방향성을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졌다. 지난 3년의 경험을 토대로 조합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견지하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겠다.”

- 선거 과정의 어려움은 없었나.
“단선이라 3년 전 선거보다는 수월했다. 다만 단선으로 치르다 보니 위원장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로 상임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해 지부와 노조의 교섭과 현안대응 자리에 모두 참여했다. 더 많은 조합원을 만나는 것에 다소 어려움은 있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현장 조합원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선거에서도 마주하는 접점을 만드는 데 아쉬움이 있어 향후 노력해야 할 과제로 본다.”

- 이번 임기의 목표 중 하나가 현장조직 강화와 조합원 소통 강화다.
“그렇다. 내년부터 새 임기가 시작하면 대다수 사업의 초점이 코로나19 극복 사업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대중조직인 노조가 현장과 소통하기 어려웠던 지점을 극복해야 한다. 잘 만나지 못하다 보니 인적 결합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지부 간부끼리 어색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루빨리 회복해야 한다. 우선 150여개 산별 지부 간부 간 유대를 강화하고, 상당히 파편화된 현장 조합원의 노동자성 회복을 위한 교육도 절실하다. 간부를 중심으로 학점제 같은 방식의 교육을 시도해 역량을 개발하고 조합원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간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독려해 산별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코로나19 확산 가운데 위축된 활력을 강화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과제 ‘대중조직’ 역량 제고

- 새 임기 과제에 앞서 앞선 임기를 평가한다면.
“간단히 요약하긴 어렵다. 우선 조직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노조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크고 작은 방역규제로 기자회견조차 제대로 못했던 시기 아닌가. 조합원에게 노조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지부별 교섭에 모두 참석했다. 상견례는 물론이고 교섭이 어려운 곳은 4차 대표교섭까지 직접 하면서 사용자쪽에 긴장감을 주고 교섭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체결식도 빠짐 없이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교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지부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어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고 판단한다.

또 다른 중점 사안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였다. 노조는 비정규센터를 만들어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을 지원하고 한화생명 보험설계사와 에이스손해보험콜센터, KB손보CNS 콜센터 노동자를 조직화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은 여전히 있지만 같은 산업군의 노동자와 연대하고 투쟁하면서 산업 전반을 개혁·개선하는 산별의 정신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금융공공성 강화다.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규제당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종래에는 정부가 정책을 마련하면 이후 국면에서 저항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이런 방식은 노조가 목소리를 내도 효력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금융권 노사정협의체를 구축했다. 금융노조와 함께 협력한 결과다. 현재는 정권이 바뀐 뒤 요구에 응하고 있지 않아 답답하다. 자금시장 위기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쉬이 풀릴 문제가 아니니 정부당국이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 사무금융 노동자들은 산별 전환을 위해 오랜 기간 정성을 기울였다. 어디까지 왔나.
“형식적 단계는 마무리됐다. 이제는 그 실질을 채워야 한다. 금융공공성이 산별의 요구로 지부와 본부, 산업 차원에서 구체화되고 실현되는 것이 바로 산별로의 실질적 전환이다. 사무금융 산별노조 운동이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기업별노조의 성과와 별개로 관성이 남아 있다. 현재 사무금융노조의 업종별 본부 가운데 일부는 통합교섭을 하고 있다. 이런 업종별 통합교섭을 더 시도하고, 궁극적으로 산별교섭을 열 수 있어야 한다. 현실이 된 금융산업 위기로부터 조합원과 조직을 지키는 일, 이를 위해 산별의 실질적 전환을 담보하는 게 앞으로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과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유동성 공급확대 후 축소 사이클에 정부 무능 현실화”

- 최근 금융산업 위기가 심상치 않다. 고용한파도 예상된다. 노조 역할은 무엇인가.
“노조는 금융당국의 무능을 해소하는 과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는 증권사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정리해고 성격으로 진행될 조짐이 보여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구축한 금융권 노사정정책협의체 재가동이다. 이번 위기는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위기에 대응한 글로벌 정치경제 시스템의 작동, 그리고 이후 발생한 부작용이 큰 틀을 갖춘 가운데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가계부채와 자산불평등이라는 고유문제가 함께 작동해 만들어진 결과다. 금융산업은 코로나19 위기 초반 유동성 공급확대로 버블 몸살을 앓았는데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과 그로 인한 유동성 축소로 다시 디버블링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예견된 유동성 확대와 축소 사이클(주기) 속에서 가게와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책무를 진 정부의 부재와 금융당국의 무능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현실화됐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산업과 한국 경제 위기는 노사 간 대립 국면을 초월한 영역에 있다. 한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하는 중이다. 그런데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고작 노동자 임금인상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나 내고 있다. 지지세력만 보고 가는 것 같은데 화물노동자 파업의 경제적 효과는 분석할 생각도 않은 채 노동자가 아니라고 잡아떼다 업무개시명령을 하는 수준이다. 노조도 반성할 대목이 있다. 금융산업의 비중과 역할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전통적인 노동운동에서 금융자본은 부정돼야 할 존재여서 일수도 있다. 앞으로 사무금융노조가 중심이 돼 노동에서의 금융의 중요성, 정책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 최근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입법에 집중하고 있다. 사무금융노조에 노란봉투법은 어떤 의미가 있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의 핵심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새로운 개념정의다. 비정규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앞에 접두어를 붙여 노동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금융권에도 정규직은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이 범주에 있지 않은 노동자는 너무 열악하다. 우리가 조직화한 보험설계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개인 간 편차가 크고 열악하다. 이들뿐 아니라 콜센터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기존 사업장의 영업 관련 부서로, 이들의 비용을 절감할 때 사업장의 전체 이익이 커지는 면도 있다. 그래서 조직화 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차근히 모두를 설득하면서 하나의 노동자로서 포괄해 목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노조법 2·3조 투쟁의 전면에 금속노조가 있지만 금속노동자만의 일이 아니다. 사무도 금융도 모두 포함한 일이다. 사무금융 노동자가 함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 조합원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실질적 산별 전환 완수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다. 조합원들도 애정어린 관심과 비판을 해 달라. 사무금융노조 스스로 울타리에 갇히지 말고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그리고 다른 노동자를 보면서 함께 더불어 노력했으면 한다.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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