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재예방을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가 줄어들지 않는 ‘정체기’로 현재를 규정한 노동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4대 전략과 14개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로드맵을 제시했다.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중대재해 감축에 범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노동부는, 로드맵의 실현을 통해 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또한 제시했다.

정부가 제출한 로드맵이 실질적인 중대재해 감축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을 4대 전략의 첫 번째로 제기한 것과 관련해서는 더욱 비판의 수위가 높다. 위험성평가는 2010년~2012년까지 3년간의 시범사업을 거쳐, 2013년에 제도화됐으나 여전히 일터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상태다. 사실상 안전·보건관리자들에는 1년에 한 번씩 실시해야 하는 거추장스러운 서류작업으로 평가받고 있고,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익히 들어는 봤지만 참여하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전면 실시가 법으로 강제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살펴볼 자료는 차고 넘친다. 안전보건공단의 자체 연구를 비롯해, 민주노총 등 노동계가 실시한 다양한 제도에 대한 평가와 연구들이 존재한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일터에 위험성평가를 정착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안 마련을 위해, 무엇보다 노사정과 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논의의 자리를 마련하는 게 우선일 수 있겠다.

올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일터에서 위험성평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비로소 시작됐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4조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가 규정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실시해야 할 책무가 부가됐다. 그에 따라 ‘종사자에 대한 의견 수렴’과 ‘위험성평가’가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과 이행에 관한 조치의 필수 요건으로 제시되는 등 실질적인 ‘노동자 참여’의 경로가 마련된 후 제도가 10년 만에 순기능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강조하는 현장의 작동성은 단순히 감독행정을 피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실질적인 노동자 참여를 보장해야 가능함을 역설하는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계는 분명하다. 여전히 현 위험성평가는 현장에 튼튼한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노동조합에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전담하는 담당자가 있어야, 노사가 공동으로 실행하는 위험성평가가 강제되고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제한적 조건이라는 점 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즉, 정부가 로드맵 전략 방향의 첫 번째로 꼽은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이 실현이 불가능한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지 않고, 현장 노동자에게는 지금처럼 ‘그림의 떡’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현장 사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실질적인 이행이 가능한 필요·충분조건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가 참여해야’가 중대재해 예방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인식전환이 필수적이다.

재계가 여전히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안타깝다. 정부의 로드맵 발표 직후 한국경총은 논평에서 “안전주체들의 책임에 기반한 ‘자기규율’과 ‘예방 역량’ 향상”이라는 “기본원칙”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고 처벌을 신설”했다며 “규제를 강화했다”는 볼멘소리했다. 우선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1년에 한 번씩 실시하도록 강제됐던 위험성평가는 의무화된 제도가 아니고 무엇이었는지를 의심케 한다. 또한 사업장의 유해·위험이 중대재해 등으로 현실화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위험성평가를 하고, 그것이 부실해 종사자에게 신체 훼손이나 치명적인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벌을 한다는 것에 대해 ‘규제 강화’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한 형사처벌 확행”, “핵심 안전수칙 위반 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엄정 조치” 등을 거론하며 로드맵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다하지 않았을 때도 관용을 베풀 것을 요구하고,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재해, 다수의 사망사고조차 형사처벌을 하지 말라는 것은 생떼를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로드맵의 기본원칙에 동감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자율안전관리’라는 미명하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없던 이전 시절과 같이 기업에 무한한 권한을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검은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재계의 입장이 확인되는 현실에서, 로드맵이 제시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이라는 방향에 대해 노동계가 기존의 ‘자율안전관리’로 회귀하는 재탕·삼탕의 반복이며 허울뿐인 대책이라고 비판한 것은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인식이 바뀌지도, 아니 바꿀 생각도 없고, “산재사망 기업에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국민적 인식과 사회적 합의에도 미달하는 재계를 강제하며, 산재사망의 감축을 논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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