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동센터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보궐선거로 당선한 뒤 올해 예산이 대폭 삭감했는데, 내년에는 더 깎일 상황에 처했다. 센터 직원들의 고용불안은 물론, 센터사업 주요 대상인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표방하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언일 뿐인가.<편집자>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의 취약화(precarization) 문제는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가 남겨준 유산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는 노동시장 하단부에 광범위한 노동약자 집단을 만들었다. 이미 전체 노동시장에서 직접고용 정규직 일자리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왔다. 기간제·사내하청·특고·프리랜서·플랫폼 노동 등의 이름으로 우리 노동시장 하단부는 ‘취약 노동자’로 가득 찼고, 수많은 산업재해도 그러한 일자리에서 주로 발생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해소는 이제 특정 정권을 초월해 우리 사회가 미래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중구조화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모든 정권에서 공히 강조되는 바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현 중앙정부나 서울시 모두 이중구조화의 해소와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고 나선 데에는 그러한 과제가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으로 부상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과 결과에는 ‘노동 이해대변의 이중구조화’가 자리한다. 취약 노동자는 단지 처우가 취약해서만 문제인 게 아니다. 처우의 취약성 배후에는 ‘목소리(voice)의 취약성’이 내재해 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일차적으로 조직력이 약해서다. 약한 조직력의 배후에는 조직화하기 힘든 제도적 여건들이 존재한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을 비준한 것은 그러한 제약 여건을 제거해 목소리의 사회적 균형을 만들어 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행여 그들이 조직화하더라도 노동법적인 단체교섭의 기회를 쉽사리 얻지 못하는 점도 중요한 문제다. 이 역시 제도의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노동약자들이 이해대변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무조건 ‘힘을 길러라’라고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에는 입법을 통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노동회의소를 만들자는 의견도,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바꾼 취지도 모두 노동 이해대변의 사회적 균형을 추구하려는 취지다.

지방정부의 의지와 힘이 있다면, 적어도 해당 지자체 안에서는 정책적 의지에 따라 처우의 취약성과 목소리의 취약성 모두를 일정하게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가장 상징적인 지대가 서울시, 상징적인 기관이 바로 서울노동권익센터다. 주체의 힘이 미약하고 제도적 여건이 미비한 한계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자체장이 이끄는 지방정부의 공적 권위와 자원을 통해 일정하게 극복해 노동약자가 살아갈 수 있고, 또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해소 과제가 시대정신이라면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는 방도를 택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 수년간의 서울노동권익센터 활동이 한계가 없지 않았겠으나 대체로 효과성과 효율성 모두를 잡은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고 평가한다. 관료적 경직성을 탈피한 센터 거버넌스는 유연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효율성을 발휘했고, 구성원의 자의식과 헌신적 노력은 효과적으로 처우와 목소리 모두가 취약한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고귀한 역할을 했다. 노동 이해대변의 분화 상황 속에서 센터의 그러한 기능은 처우 개선과 목소리의 증진을 향한 마중물을 형성해 주는 일종의 간접적이지만 대안적인 이해대변 기제였다.

정부의 성격이 바뀌었어도 사회구조의 병폐는 충분히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이전 정부에서 그나마 만들어 놓은 실험적인 정책 기제가 충분히 제도화되기 전에 그것을 허물어 버리는 일은 시대정신을 저버리는 일이다. 서울시가 정말로 약자와의 동행을 원한다면 오히려 이전 정부의 성과를 계승해 더 발전시켜 가는 길을 택하길 바란다. 행여 이름(naming)이 싫다면 다른 이름이라도 좋다. 중요한 건 조직과 인력과 예산과 기능을 키워가는 ‘실용적 마인드’다. 서울시마저 노동약자를 버린다면,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의 골은 더욱 심화하고 약자들의 설움은 더욱 커지며, 끝내 제어되지 않는 사회갈등의 비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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