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고은 기자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한비네)가 비정규노동 운동단체와 민관협력 노동센터를 아우르는 전국네트워크로 출범한 지 10년을 맞았다. 10년간 한비네가 걸어온 길은 지역의 노동센터를 묶어 내 지방정부 노동정책을 견인하고 경비노동자 같은 미조직 노동자를 적극 조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의 10년은 지역의 노동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동시에 지역에 머무르지 않은 전국적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 다리소극장에서 한비네 창립 10주년 기념식 및 토론회 ‘함께 만든 10년, 함께 나갈 10년’이 열렸다. 지역 노동센터 관계자 등 약 90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한비네와 본지가 공동주최했다.

출범 당시보다 노동센터 두 배 이상 증가
아파트 경비노동자 조직화 앞장서

지역 비정규노동 운동은 2003년 울산북구청이 조례 제정을 통해 울산북구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를 전국에서 처음 개소하면서 분기점을 맞았다. 지자체가 민간에 비정규 노동자 지원활동 사업을 위탁해 운영하는 방식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된 것이다. 약 10년이 지난 2012년 말 30여개 센터가 만들어졌다. 센터 간 협력을 통해 사업을 공유하고 함께 조직화 방안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2012년 11월29일 한비네가 출범했다. 현재는 70여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한비네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 제도 바깥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써 왔다. 서울시 노동센터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노동상담이 2만2천374건으로 2만건을 넘었고, 최근 5년간 노동상담을 받은 서울시민은 8만8천470명에 이른다. 주로 고용불안과 각종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나 작은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취약계층이 센터를 찾았다. 상담과 지원을 넘어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2019년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공동사업단을 꾸려 당사자 모임을 만들었고 노조와 협회 등 다양한 층위로 조직화했다.

이남신 한비네 의장은 “숨은 노동을 찾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대하면서 여기까지 달려왔고, 지역과 세상을 바꾸겠다는 한결 같은 결의를 타협하지 않은 채 노동단체든 지역 노동센터든 연연하지 않고 걸어 왔다”며 “노조 바깥에서 어디 기댈 데도 없는 노동자들의 곁사람으로, 참벗으로, 비록 빛나지는 않아도 묵묵히 우리 자리를 지켰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장은 “내년 집행부가 새로 꾸려질 텐데 훨씬 더 힘 있게 10년의 도약을 준비할 것”이라며 “양대 노총을 비롯해 노동유관기관으로도 외연을 넓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비네와 녹색병원은 이날 기념식에서 의료취약 노동자 건강지원사업 ‘건강한 동행’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산재불승인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를 포함해 의료취약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외래진료·재활치료 등 의료비를 최대 500만원 이내로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 비정규직 정책 중심축 돼야”
“노조와 연결하는 조직화사업 필요”

기념식 이후 진행된 토론회에서 한비네 정책연구위원인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한비네가 어떤 비전을 함께 공유하고 있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목표는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며 “센터들 간 정보를 나누기 위한 수단적 존재로 위상이 떨어지지 않으려면 지방정부와 노동자 지원활동의 방향성을 논의하고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체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이를 위해 TF팀을 만들어 비정규정책박람회 같은 자리에서 열린 토론을 해 보는 것도 방법”이라며 “향후에는 박람회를 지역과 주변, 비정규 노동정책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양대 노총도 한비네와의 정책협력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곽이경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조직실장은 “조직화 의제와 흐름을 파악하는 데 상담데이터베이스는 중요한 기초자료인 만큼 상담사례 공유와 협력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노동상담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속적인 조직화사업이 되려면 센터의 인력과 기금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조와 유기적인 조직화사업이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조직확대본부 실장은 “지역에서 조직경쟁으로 인해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한비네가 비정규직 정책의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며 “양대 노총, 한비네가 박람회를 통해 지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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