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026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산재사망 사고만인율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담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처벌과 규제 대신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해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중대재해를 일으킨 사업주를 엄중히 처벌하고 규제했는지 평가는 둘째치더라도, 사업장에서 스스로 안전에 대한 규율을 만들고 예방하는 체계가 정착될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서 주목할 점과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 손익찬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이번 로드맵에서 발표된 정부의 4대 전략과 14개 핵심 과제 중에서 첫 번째가 ‘위험성평가 개편’이다. 우선, 정부는 대기업의 경우 안전보건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처벌가능성 등 사법리스크에만 대응하고, 중소기업은 역량 자체가 부족하다고 봤다. 정부는 위험성평가를 활성화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하고 제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겠다고 밝혔다. 위험성평가 미실시와 부적정실시에 관한 처벌조항을 신설하고, 근로감독의 방향도 위험성평가가 제대로 됐는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적어도 정부의 현실 진단과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타당하다. 문제는 ‘어떻게’인데, 그 핵심은 ‘무엇이 부적정한 위험성 평가인지’라고 생각한다. 위험성평가라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과 하위규정에서 정하는 상세한 지시 규정을, 어떻게 하면 우리 사업장의 현실에 맞게 적용시킬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대기업 위주로 시행되고 있는 위험성평가조차도,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할 지점은 서류상으로 위험성평가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가 아니다. 얼마나 현실적이고 수용가능한 대책인지, 그리고 위험성평가하면서 노동자와 노조 참여가 충분히 보장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위험성평가의 실시 자체만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관한 면죄부를 발부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중대재해 발생 원인이 담긴 ‘재해원인조사 의견서’를 공개해서 예방을 위한 ‘공적 자원’으로 활용한다면서,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의 과정, 기업문화, 안전보건관리체계 등 구조적 문제까지 분석·제시”하겠다고 약속한 부분도 주목된다. 재해원인조사 의견서는 원인 규명과 대책 수립을 위해서 작성하는 문서이지만, 수사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된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동종업계 노동자는 차치하더라도, 그 사업장의 사업주나 노동자도 그 내용을 몰랐다. 따라서 중대재해를 교훈 삼아 스스로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부가 밝힌대로 재해원인조사 의견서는 작성되는 즉시, 그리고 제한 없이 공개돼야 한다.

이 밖의 문제도 많다. 우선 정부가 지금까지는 안전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만 강조했다면서 ‘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명확히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제대로 안전권을 누려본 적이 있나. 위험요인을 알 권리, 거부할 권리, 참여할 권리를 제대로 누려본 적이 없다. 더구나 안전에 대한 노동자 의무는 이미 산업안전보건법 40조에서 정하고 있다. 진단도 틀렸고, 해결책도 틀렸다.

둘째로 작업중지의 기간·범위·해제 절차를 ‘합리화’하겠다는 점이다. 여기서 ‘합리화’는 결코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미 작업중지 명령의 범위는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해제 절차도 지나치게 손쉬워졌다. 최근 오봉역의 작업중지 해제 사례에서 보듯이, 하루아침에 정부 입장이 바뀌기도 한다. 개악을 막아야 한다.

셋째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재방식 개선’을 하겠다며, 경제적 제재와 상한 없는 벌금형이 강조된 지점이다. 징역형을 없애거나 축소하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넷째, 중대재해 원인 파악을 목적으로 한 CCTV 설치를 제도화한다는 점이다. 자율규제가 전반적으로 강조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CCTV 설치가 부각되는 것은 어색하다. 노동자와 노조에 관한 감시와 처벌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다섯째, 원하청 간 “안전관리 역할 명확화”이다. 김용균 노동자의 피로 쓰인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63조는 도급인이 다단계 수급인의 근로자 모두에 관해서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수급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수급인의 책임을 명확하게 정하겠다는 것은 결국 도급인의 책임을 덜어주겠다는 의도다.

여섯째,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경우 법적인 권한이 약하다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적정 업무·인력 수준 및 활동 시간 보장”이 약속된 부분은 바람직하지만, 사업주가 거부하면 사업장 출입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끝으로 골든타임 확보에 관한 부분이다. 의료체계 정비뿐만 아니라, 고의적인 산재 은폐를 막고 신고 의무를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 2015년 청주 에버코스 노동자 사망, 2021년 거제 이수도 노치목 노동자 사망 등 신고 지연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재발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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