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노동센터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보궐선거로 당선한 뒤 올해 예산이 대폭 삭감했는데, 내년에는 더 깎일 상황에 처했다. 센터 직원들의 고용불안은 물론, 센터사업 주요 대상인 취약계층 노동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표방하는 ‘약자와의 동행’은 허언일 뿐인가.<편집자>

 

박근혜 정권 후반부터 문재인 정권 전반까지 노동시장 하층에 속한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동회의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룩셈부르크의 노동회의소 사례도 소개됐다. 그때 필자는 ‘노동회의소’ 설립에 반대한다는 글을 몇 차례 썼다. 노동문제에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현실을 봤기 때문이다.

10% 조직 노동과 90% 미조직 노동을 억지로 구분하고, 전자는 노동조합이 감당하니 후자는 노동회의소가 감당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과학적으로 보였다. 특히 헌법이 보장한 단체결성권(단결권)과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 중에서 단체결성권만을 따로 떼어내어 ‘노동회의소’로 연결시키는 것이 우려됐다. 노동시장의 하층에 속한 노동자에게 ‘노동3권’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노동 1권(단결권)’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노사관계 형성과 노동권 발전의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노동회의소’ 주창자들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노조 조직률이 10%대 정체되면서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시장 상층부를 대변하는 운동에 그치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노동회의소’를 제기했다. 물론 한국의 노동운동이 대기업, 정규직, 공공부문만을 위한 일종의 ‘귀족노동자’ 운동으로 전락했는지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한국 노동운동이 조직률 10%대 초반에 머물면서 정체했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정권의 속성과 상관없이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면서 조직 노동자 수는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하지만 꾸준히 성장했다.

에스핑-앤더슨이 구분한 복지국가 유형에 따르면 ‘보수적 조합주의(conservative corporatism)’에 속하는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 ‘노동회의소’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 이를 한국에 도입하자는 주장에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노동 1권”이라는 개념에서 유추할 수 있듯 ‘노동회의소’가 노동자조직으로서 ‘대변’(representation)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는 기대가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노동 3권”의 삼각형에서 알 수 있듯 노동자의 집단적인 ‘대변’과 ‘교섭’과 ‘행동’은 상호불가분이다.

“그렇다면 미조직 90%와 노동시장 하층민을 위한 제도를 꾸리지 말자는 것인가”라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 답변은 “’대변’이 아니라 ‘보호(protection)’에 초점을 맞춘 제도나 기관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였다. 나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와 기관이 서울시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다름 아닌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에서 민관 합동으로 운영하는 노동센터가 그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을 자꾸 새로 만들자는 이들이 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만들고자 하는 것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 지 살펴야 한다. 노동센터가 대표적이다. 미조직 90%를 위한 제도와 기관, 노동시장 하층민을 위한 제도와 기관이 노동센터다. ‘교섭’과 ‘행동’은커녕 스스로 ‘대변’하기조차 힘든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민관합동(Private-Public Partnership)의 제도와 기관이 노동센터다.

서울시가 노동센터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내게는 미조직 90%와 노동시장 하층민을 위한 예산을 줄이기로 했다는 소리로 들린다. 미국이 기획하고 실행하는 글로벌 공급 사슬의 붕괴와 지정학적 충돌로 이번 겨울은 더욱 추울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회의소’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던 이들이라면 노동센터 예산삭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때다. 노동센터가 ‘노동회의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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