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과 변호인, 연대단체 회원들이 30일 오후 대법원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던 중, 국가 손해배상액 30억원이라고 쓴 종이를 찢어 하늘로 던지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에 저항한 노동자의 행동이 ‘정당행위’로 인정됐다. 대법원은 경찰이 헬기를 이용해 최루액을 투하해 파업을 강제 진압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노조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액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압장비’ 부분이 파기됐다. 무려 13년여 만의 대법원 결론이다.

‘헬기 진압’ 노동자 저항은 “정당행위”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30일 오후 정부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와 조합원 10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에서만 결론이 나올 때까지 6년5개월이 걸렸다. 애초 지난해 10월30일 선고기일이 예정돼 있었지만 재판부가 연기하면서 최종 선고까지 1년이 더 소요됐다.

이날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한 부분은 ‘헬기(2심 인정액 5억2천만원)’와 ‘기중기(2심 인정액 5억9천만원)’ 수리비 부분이다. 2심 인정 전체 손해액 11억원에서 가장 비중이 커 이 부분 파기가 전체 쟁점을 좌우했다.

대법원은 먼저 헬기를 이용한 경찰 진압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경찰이 2009년 8월 파업 진압 과정에서 헬기로 최루액을 살포하거나 헬기 하강풍을 옥외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에게 직접 노출시켜 경찰장비를 위법하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은 헬기 3대가 새총의 볼트를 맞아 손상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직무수행 중 특정한 경찰장비를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어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직무수행은 위법하다고 봐야 한다”고 못 박았다. 경찰장비인 ‘헬기’를 사용했을 때 발생할 우려가 있는 노동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 정도가 통상 예견되는 범위 내에 있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저항이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원심이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경찰관의 직무수행이 적법한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 상대방이 생명·신체에 대한 위해를 면하기 위해 직접 대항하는 과정에서 경찰장비를 손상했더라도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찰이 의도적으로 헬기를 낮은 고도에서 제자리 비행하며 옥외 농성자에게 바람을 쏜 것은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옛 경찰항공 운영규칙은 헬기가 사람이 밀집한 지역을 비행할 때 반경 600미터 범위 내 가장 높은 장애물 상단에서 300미터 이상 고도를 유지하도록 정하고 있다.

‘기중기 손상’ 80% 책임 인정은 ‘불합리’

‘기중기 손상’ 부분도 노동자들 책임 비율을 80%로 인정한 원심은 과도하다고 봤다. 경찰은 크레인업체의 기중기 3대를 임차해 파업 진압에 활용했다. 기중기는 노동자들이 공장 옥상에 설치한 장애물을 부수고 위협하는 데 사용됐다. 경찰은 기중기 손해 책임도 물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통상손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노동자 책임을 80%로 인정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춰 현저히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진압작전 과정에서 기중기에 대한 조합원들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경찰 부상 치료비(1천83만원), 차량(65만9천원)·채증카메라 등(32만9천원)·휴대용 무전기(219만원) 손상과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불법집회 및 시위라 할지라도 과잉 진압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대응행위가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범위 내라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쌍용차 국가배상 소송은 10년 넘게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2009년 5월 사측이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자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돌입했다. 경찰은 그해 8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 강제 진압했다.

그런데 국가는 경찰관 부상과 장비파손을 이유로 개별 노동자와 노조에 14억5천여만원의 손해액을 청구했다. 1·2심은 정부의 손을 들었다. 1심은 노조간부들이 폭력행위를 실행·교사했다며 13억7천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은 헬기와 기중기 손배 책임을 일부 제한하며 11억3천여만원으로 손해액이 낮아졌다.

대법원에서 6년5개월간 사건이 계류되며 배상액 규모는 지연이자가 붙어 30억여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대법원이 원심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만큼 파기환송심에서 확정되면 손해액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파기환송심은 경찰 진압에 대한 저항이 정당행위인지, 손해액 비율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13년간 노동자·가족 31명 고통에 눈감아
“오늘이 생애 최고의 날” 노동자 눈물

쌍용차 노동자들은 선고 직후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파업 이후 목숨을 잃은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만 31명에 달한다. 노동자들은 ‘당연한 판결’이라면서도 ‘지연된 정의’라고 비판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13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와 파기환송됐으므로 경찰이 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소송을 취하해야 할 것”이라며 “경찰이 소송을 철회화지 않으면 또다시 파기환송심에서 다퉈야 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장석우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점거파업에서 모든 국가폭력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판결”이라고 환영했다.

파업 당시 지부 간부를 맡았던 채희국(52)씨는 “선고를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채씨는 2009년 징계해고돼 가압류를 당했다가 2013년 복직했다. 그는 “급여가 가압류되면서 고통이 컸지만, 버티자고 다짐하며 살았다”며 “경찰이 배임 혐의 때문에 소취하를 못한다고 했는데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당연히 취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옥쇄파업에 참여했던 조문경(60)씨도 “최루액에 곤봉을 맞아가며 버티다 다리를 절게 되고 건강이 안 좋아져 치료를 받았다”며 “오늘이 생애 최고의 즐거운 날”이라고 했다. 조씨는 전날 야간근무를 마친 뒤 휴가를 내고 법원에 왔다.

정부가 쌍용차 손배소를 취하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계속 이어졌다.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의 파업 진압이 폭력·과잉진압이라고 봤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듬해 손배소가 노동 3권을 후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대법원에 냈다. 같은해 민갑룡 전 경찰정장이 경찰의 과잉진압을 사과했다. 금속노조는 즉각 성명을 내고 “국가는 하루빨리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조합원 가압류를 철회하고, 오늘 판결을 기점으로 손배·가압류로 보복하는 행위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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