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병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2. 10. 28. 선고 2022구합52140

Ⅰ. 사실관계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원고 주식회사 두원정공(이하 ‘원고’ ‘회사’)은 경영악화로 2017년부터 매년 한계임금을 정해 소속 근로자 전원에게 근속기간에 관계없이 동일한 금액을 지급했다. 유일한 노동조합이었던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두원정공지회(이후 2020년 교섭대표노조가 됐음. 이하 ‘교섭대표노조’)가 회사의 한계임금에 동의했고, 근로자들은 나머지 임금과 상여금을 반납해야만 했다. 일방적 임금삭감에 부당함을 느낀 일부 근로자들은 새로운 노동조합들(이하 ‘소수 노조’)을 설립해서 회사를 상대로 체불임금을 청구하고 사용자를 형사 고소했다.

위와 같이 분쟁이 지속되던 상황에서 원고는 매출액 감소 등을 이유로 2021년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이하 ‘정리해고’ 또는 ‘경영상 해고’)를 계획한다. 원고는 2021년 3월17일 교섭대표노조와 단체협약 중 ‘경영상해고의 제한’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내용의 특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원고는 인사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으로 인사고과 평가점수, 기업회생 협조도(임금반납 동의서 제출 횟수에 따라 점수 배점), 근태평가, 상, 벌, 부양가족수를 정하고 교섭대표노조에게 내용을 고지했다. 교섭대표노조는 원고에게 회사에게 고소·고발(소송) 및 가압류를 한 횟수를 점수화한 ‘기업회생 저해도’를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의 평가항목으로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종적으로 원고는 기업회생 저해도를 대체한 취업규칙 준수동의서 제출 여부를 대상자 선정 기준에 추가했다.

원고는 위와 같은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안에 따라 총 45명을 무급휴직 대상자(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해고된다)로 선정했다. 구체적으로 교섭대표노조 조합원은 195명 중 11명이, 소수노조 조합원은 68명 중 33명이, 비조합원 1명이 무급휴직 대상자가 됐다. 이 중 교섭대표노조 조합원 2명, 소수노조 조합원 32명이 해고까지 이어졌다. 해고자들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모두 부당해고로 판단을 받았다. 그러자 회사는 서울행정법원에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소송을 제기했다.

Ⅱ. 판결의 내용

법원은 이 사건 정리해고의 선정기준은 객관적 합리성과 사회적 상당성을 갖춘 기준이라고 보기 어려우므로, 해고 대상자의 선정이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 기업회생 협조도 점수는 임금반납 동의서 제출 여부 및 그 횟수로 산정되는데, 원고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임금반납 동의서 제출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근로자들에게 일률적으로 삭감된 한계임금을 지급했다. 또한 원고는 근로자들로부터 임금반환 동의서를 제출받아 체불임금 소송에서 유리한 판결을 얻고, 체불임금 소송 등 법적 분쟁을 제기하는 근로자들을 우선적인 해고 대상자로 선정하려는 의도에서 기업회생 협조도를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근로자의 임금에 관한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② 원고는 회사의 요구에 순응하는 근로자를 우대하고, 법적 분쟁을 제기하는 근로자들을 우선적인 해고 대상자로 선정할 의도로 취업규칙 동의서 제출 여부를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 포함시켰다. 또한 취업규칙 준수동의서는 취업규칙의 준수만을 확약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합의 사항’을 준수하며 이행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원고와 교섭대표노조 사이 합의 내용이 개별 근로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항이라도 그 이행을 강요하는 결과가 돼 부당하다.

③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서 기업회생 협조도와 취업규칙 준수동의서에 배정된 점수는 총 12점이다. 위 2개 기준을 제외할 경우 기존 기능직 무급휴직 대상자 44명 중 22명의 순위가 변동돼 무급휴직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바, 위 2개 기준은 해고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기준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사건 선정기준에 의해 무급휴직 대상자로 선정된 근로자들은 대부분 교섭대표노조의 조합원이 아니었다. 결국 원고는 기업회생 협조도와 취업규칙 동의서를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 포함시킴으로써 법적 분쟁을 제기했거나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근로자들을 우선적인 해고 대상자로 선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1.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

정리해고는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개별적 해고와 달리 사용자측의 경영상 사정으로 인한 것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정리해고에는 ‘자기책임의 원칙’이라는 일반적 법 원리가 작동하지 않으며, 근로자들은 귀책사유 없이 ‘해고’라는 극단적 불이익을 입게 된다. 나아가 정리해고는 다수의 근로자가 해고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영향이 크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24조에서 경영상 해고에 대해 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필요성) ②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하며(보충성) ③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그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고(선정기준의 공정성) ④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의 기준 등을 근로자대표에게 해고실시일 50일 전까지 통보하고 성실하게 협의해야 한다는(사전협의)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는 선정기준의 공정성이 문제됐으므로 이에 대한 판례의 태도를 살펴본다.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 근로기준법 24조1항 내지 3항에 따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의 기준을 정하고 이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이 확정적·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당해 사용자가 직면한 경영위기의 강도와 정리해고를 해야 하는 경영상 이유, 정리해고를 시행한 사업 부문의 내용과 근로자의 구성, 정리해고 시행 당시의 사회·경제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객관적 합리성과 사회적 상당성을 가진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하고 그 기준을 실질적으로 공정하게 적용해 정당한 해고 대상자의 선정이 이뤄져야 한다(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1두11310 판결 참조).

2. 본 판결의 의의

본 판결에서 주목할 점은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이 교섭대표노조와 합의를 통해 마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정리해고에서는 노·사 간 이해관계 충돌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문제됐다. 근로자들은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 부양할 가족 유무, 재취업 가능성 등 주관적 사정이 고려되기를 희망하지만 회사는 업무능력·자격증 등 경영상 요청되는 사정들이 반영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대법원은 “회사가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해 해고의 기준에 관한 합의에 도달했다면 이러한 사정을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인지의 판단에 참작돼야 한다”는 판결을 해 왔다(대법원 2003. 9. 26. 선고 2001두10776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교섭대표노조는 원고에게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에 근로자의 주관적 사정을 배려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오히려 체불임금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을 해고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 교섭대표노조가 앞장서서 근로자의 권리행사를 막는 당황스러운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이는 사업장에서 소수노조를 완전히 배제시키려는 교섭대표노조의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회사는 자신의 경영에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소수노조 직원들을 일거에 해고하고 싶었는데, 마침 교섭대표의 욕망과 회사의 바람이 일치했다. 이들은 순조롭게 해고 대상자의 기준을 합의했고 결국 소수노조 조합원들은 일터 밖으로 내몰렸다.

본 판결에서 법원은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이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제한하며, 해고 대상자로 선정된 근로자들이 대부분 교섭대표노조의 조합원이 아닌 소수노조 조합원인데 이처럼 소수노조 조합원들만 일방적으로 해고된 원인이 기업회생 협조도와 취업규칙 준수동의서 항목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회사가 교섭대표노조와 해고 대상자 선정을 합의했더라도 이 사건 해고 대상자 선정의 객관적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회사가 교섭대표노조와 합의한 기준이 소수노조 조합원(혹은 비노조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면 법원은 그런 기준을 합리적이고 공정하다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복수노조는 여러 노조가 한정된 자원(조합원수, 근로시간면제한도)을 나눠야 하기 때문에 노조 간 갈등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섭대표노조는 다른 소수노조와 그 노조원들에게 잔인해지기 쉽다. 교섭대표노조와 회사가 결탁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소수노조 조합원들에게 본 판결은 큰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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