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나는 진짜 사장에게 책임을 묻고 억지 손해배상을 금지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위헌인지 아닌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지 아닌지는 잘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은 법률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노조법 때문에 고통받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여야 국회의원 모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가 돼서 노조를 만들고 교섭해 노동조건을 개선할 권리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할 뿐 권리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도 개선되지 않는다.

지난 17일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비정규 노동자들과 손해배상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한 지 무려 20년 만이다. 그러나 그 입법공청회 공간에 피해 노동자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입법공청회의 진술인에 노동자들은 포함되지 않았고, 학계와 경영계, 그리고 노동계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공청회에서는 ‘현실’보다 ‘법리’가 더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 추천으로 참여한 윤지영 변호사는 “노조법 개정 논의가 이론 논쟁으로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현실을 진술해야 했다.

공청회 자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 하청의 경영에 개입하는 것 아닌지’ ‘사용자 개념을 넓히면 사용자가 너무 광범위하게 확대되는 것 아닌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대다수 간접고용 구조에서 원청이 하청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냐고.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가 대우조선해양의 작업도구를 갖고 대우조선해양의 업무지시에 근거해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배를 만들었지만 대우조선해양을 상대로 교섭을 할 수 없었고, 그 교섭 요구가 483억원 손해배상의 근거가 됐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냐고 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또 질문했다. ‘하청노동자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하청단가 연동제를 실시하거나 원·하청 지배구조를 개선하거나, 경영계가 자율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국회는 지난 20년간 그 일을 하지 않았는가. 왜 아직도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은 더 심각해지고 권리는 더 침해되는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조차도 반대하는 경영계가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리 없으며,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 없이 원·하청 구조 개선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말 모르고 있는가.

법원이 이미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고 있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도 인정하는 추세다. 법원에서는 손해배상도 일정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입법이 필요하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묻는다. 정말로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법원 판결에서 비정규직의 노조할 권리가 인정되더라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기까지 10년 넘는 시간을 비정규 노동자들은 무권리 상태로 견뎌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때까지 현장에서 버티기 어렵다. 지연된 권리로 고통받고 있는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있는데, 한가하게도 법원 판결을 기다리라고 말하는 셈이다.

입법공청회까지 거쳤지만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22일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상정되지 못했다. 5만명의 국민동의청원을 받은 법안은 숙려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기업의 재산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법안 상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업의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될까 봐 이토록 격렬하게 반응하는 국회의원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동권이 훼손된 비정규 노동자 문제에는 이토록 냉담하다. 이 반대를 핑계 삼아 노동자와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을 수용하지 않는 민주당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현행 노조법이 헌법에 명시돼 있는 노동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현실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것을 해결해야 할 의무는 국회에 있다. 노동자들은 20년간 꾸준히 노조법 개정을 요구해 왔다. 거액의 손해배상을 당하면서도 권리를 요구하는 데 물러서지 않았다. 힘을 다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마련했고, 5만명의 입법동의청원을 조직했다. 도대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국회의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논평하는 태도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지금은 국회가 개정안을 입법해야 할 때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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