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아 공인노무사(이산 노동법률사무소)

나는 21개월을 꽉 채운 딸을 키우며 둘째 출산을 3개월 앞두고 있다. 요즘 내 아침 풍경은 늘 이렇다. 딸이 오전 7시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면 쭉쭉이 체조를 해 주면서 딸의 잠을 깨우고, 아침을 차려 먹인다. 딸이 아침을 다 먹으면 양치질, 머리 묶기, 어린이집 가방 채우기 등 등원 준비가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9시. 어르고 달래서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빠빠이’ 하고 나면 일어난 지 두어 시간.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나를 위한 하루가 시작된다. 겨우 한숨 돌리는 순간,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게 있다면 등원길에 마주치는 다른 워킹맘들과 나누는 다정한 인사들이다. 아주 잠깐 수다를 떨 시간이라도 생기면 양육에서도, 업무에서도 온전한 1인분을 해 내지 못한다는 토로와 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푸념이 그 짧은 찰나에 오고 간다.

정신없이 시작한 하루는 또한 정신없이 흘러간다. 업무일과 중에 그래도 맡은 일들을 다 처리하려고 애를 써 본다. 부랴부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딸의 저녁을 먹이고 씻기 싫다는 아의 텐션을 한껏 끌어올려 목욕을 서두른다. 목욕을 마치고 로션까지 바른 후 잠잘 복장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개운해서인지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것처럼 초롱초롱해진다. 그 옆에서 난 이미 녹초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딸을 재우러 들어가는 저녁 9시부터 10시 사이. 그때 같이 잠을 잘 수나 있으면 그나마도 나을 텐데 그럴 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다. 밀린 일들을 하러 서재로 향한다.

이렇게 톱니바퀴처럼 겨우 딱 맞춰 굴러가던 일상이 순식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첫 번째가 아이가 아플 때다. 급하게 일정을 하나 미루고 어린이집에서 기운 없는 아이를 안아 들고 병원을 가면서 ‘무얼 위해서 내가 이 어린아이 하나 케어하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두 번째가 급한 일이 생길 때다. 급박하게 들이닥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 물리적인 시간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육아와 일들로 블록 쌓듯이 겨우 껴맞춘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내기 위해선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내 몸을 축내는 거다. 그때마다 육아휴직 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된다.

그럼에도 육아휴직 카드를 고려해 볼 수 있는 내 사정은 그나마 좋은 편이다. 2020년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육아휴직 활용이 가능한 직장문화나 분위기라고 응답한 비율은 고작 50%에 불과하다. 회사 간부까지 하시다가 퇴직하시고 육아에 동참하고 계신다는 친정아버지가 육아를 해 보면서야 “나는 육아휴직은 자기 커리어에 무관심한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쓰는 건 줄 알았는데, 진짜 꼭 필요한 거 였다”는 얘길 하더라는 동네 아기엄마의 얘기가 웃기면서도 쓰리다.

저출산 대책으로 육아휴직 기간 연장을 고려한다고 한다. 정말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이 육아휴직 기간이 짧아서일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변수가 발생하지 않아야만 유지 가능한 일상을 버텨내는 워킹맘의 삶을 들여다보기는 했을까. 올해 직장갑질119에서 실시한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 조사에서 30개의 문항 중 감수성이 가장 낮게 나타난 문항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직원의 편의는 봐줘야 한다”였다. 육아와 직장생활, 1인2역을 해 내려고 애쓰지만 정작 그런 워킹맘들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다면, 그런 상황에서 육아휴직마저 제대로 쓸 수 없는 분위기라면, 일단 원인은 딱 여기 이 지점에서부터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닐까.

아이를 키우며 결국 일을 그만두기로 하는 결정이 어찌됐든 본인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차마 그런 선택을 하는 이들을 지지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출근을 하러 나서는 매일매일이, 그렇게 경력을 이어 가는 순간순간의 일상이 워킹맘들에게는 결심이고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워킹맘들이 매일을 결심하고 도전해야 하는 현실은 단연코 정상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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