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겨울 앞 새로 꺼낸 두꺼운 솜이불 두 채를 빨아야 했다. 작은 집 살림에 욱여넣은 세탁기로는 어림도 없어 동네 빨래방을 이용했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탈수했는데도 물 잔뜩 머금은 이불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팔이 뻐근했다. 빨랫줄에 널기도 쉽지 않았다. 물이 참 무겁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비 오던 주말 서울 태평로에서 떠오르지 않던 대형 현수막이 떠올랐다. ‘노동개악 저지’ 구호 담은 그것은 빗물 잔뜩 머금어 무거웠던지, 커다란 풍선 네 개로도 꼼짝을 안 했다. 여러 사람의 노력에도 끝내 높이 솟지 못한 채 거기 모인 사람들 속을 썩였다. 그러나 그 자리 많은 사람 한목소리 외침이 현수막 구호를 대신하고도 남았으니, 단순 진행 사고라 생각할 만했다. 거기 적은 말의 무게일 것이라 여겼다. 정작 물 먹은 솜이불처럼 축 처져 오르지 않는 것은 집권 반년을 갓 넘긴 권력자의 지지율이었다. 연이은 실책과 끔찍한 참사에도 반성 없이 내뱉던 그 말이 다만 한없이 가벼워 하늘로 솟는다. 말이 무섭다. 화가 난 사람들이 책임을 묻느라 촛불을 든다. 비 오는 날에도 방법을 찾는다. 빗물에, 눈물에 젖은 사람들이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가 온전히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그 말이 무겁다. 나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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