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나 변호사(해우법률사무소)

10·29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돼 가지만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사망자수가 점점 증가한다는 보도가 이어졌을 때 ‘정말 실화인가?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하고 어안이 벙벙하기까지 했다. 아침마다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참사 당시 처절하고 절망스러웠던 상황이 계속 보도되던 와중에 경북 봉화 광산에 고립됐던 광부 두 분의 생환 소식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덜컥 눈물이 났다.

사연을 들어보니 참으로 소중한 우연의 연속이었다. 가지고 갔던 커피믹스와 암벽 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모아 마시고, 갱도에서 비닐로 텐트를 치고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나무에 모닥불을 피워 체온을 유지하며 버틴 것이었다. 만약 커피믹스가 없었다면,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혹은 산소용접기나 나무가 없어 체온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무섭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8월 그 광산에서 이미 한차례 붕괴사고가 발생해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도 재차 매몰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화가 났다. 우리는 언제까지 노동자의 생명을 우연과 운명에 맡겨야 하는가. 기술의 발달로 달나라로 우주선을 보내고,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하는 세상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설비 투자에는 참으로 인색하다.

안전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 또한 이번 사고의 원인이었다. 이번 매몰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전날 관계 기관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했는데도 다음날 사고를 막지 못했다. 생존 광부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옷에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왔다가 가는 형식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점검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절박한 현장의 목소리다. 안전점검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져 예방효과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즉시 발 벗고 나서 안전점검 제도 실태를 조사하고, 실질적인 안전점검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위해 토론회를 포함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고 있다. SPC 계열사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단양 시멘트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한국철도공사 노동자 사망사고 등 산업재해는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그나마 시행되고 있는 안전점검 제도도 현장에서는 부실하게 이뤄져 실질적인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경영계와 노동계 의견을 어떻게 반영해 개정안을 낼지 지켜볼 것이다. 사람 목숨이 달린 생명과 안전에 관한 문제다. 시행령 개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범위를 좁히는 방식의 꼼수로 이 문제를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회자가 “사람들이 나를 포기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혹여라도 들지 않았는지” 묻자 생존 광부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확답했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말에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내 가족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커피믹스 한잔을 타 본다. 오늘따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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