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전국 민관협력 노동센터는 54개다. 13개는 광역 지방자치단체 노동센터고, 41개는 기초 지방자치단체 노동센터다. 서울만 놓고 보자면, 올해 기준으로 자치구·권역·광역 노동센터가 23개 존재한다. 상근자는 총 150여 명 정도다. 노동센터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해서 우후죽순 설립됐다. 초기에 민간 노동센터 비중이 컸다면, 이제는 민관협력 노동센터가 대부분이다.

노동센터운동은 사각지대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주목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양산됐다.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끊임없이 출현했다. 대다수 노동자는 노조 울타리 밖에 위치했다. 전통적인 노조는 이러한 노동자들을 제대로 품지 못했다. 그 결과는 노조조직률로 여실히 드러났다. 정규직 조직률은 20%를 넘나드는 반면, 비정규직 조직률은 2~3%에 불과하다.

민관협력 노동센터는 지방정부로부터 민간이 수탁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수탁기관은 주로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다. 민간의 전문성과 현장성, 지방정부의 예산과 행정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형식이다. 취약 노동계층 보호 및 권익개선을 위한 노동센터 활동은 크게 서비스·이해 대변·조직화로 나뉜다. 서비스에는 노동상담이나 권리구제·교육 등이 있다. 많은 인력과 예산이 들어간다. 원래라면 지방정부가 직접 수행할 만한 일이다. 이해 대변과 조직화는 노동센터만의 색깔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이다. 지역 노동현황, 내외부 전략, 다른 조직과의 연계 등에 따라 모양새를 달리한다.

노동센터가 지금과 같은 정체성을 형성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를 2010년대 초반으로 본다면, 이제 10년 정도 됐다.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양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질적으로는 다양해졌다. 노동센터 간 서로 유사한 점도 많지만, 또 각각의 고유한 특성이 존재한다. 규모, 위치, 중심 사업, 운동성 담지 정도 등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근자의 생각이나 지향점도 가지각색이다. 초기에는 상근자 대부분이 기존 노동활동가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익적인 활동을 하고 싶어서 온 이도 있고, 스스로를 행정 실무자로 생각하는 이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노동센터가 지난 10년 동안 명실상부 지방정부 노동정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노동센터 역사와 궤를 상당 부분 같이하는 조직이 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한 한국비정규직노동단체네트워크(한비네)다. 한비네는 전국 노동센터들의 네트워크 조직이다. 정파에 얽매이지 않고 실사구시를 지향한다. 초창기에는 인적 교류, 사업 공유 등을 하며 뭉쳤다. 그러다 공동으로 실태조사도 하고 조직화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으로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실시한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배달노동자 실태조사가 대표적이다. 전국에 걸친 한비네의 네트워크와 노동센터 간 끈끈한 유대관계가 없었다면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10주년을 맞이한 한비네 앞에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전체 노동운동 속에서 한비네가 서 있는 위치를 되돌아보고 향후 10년의 비전을 모색할 때다. 한비네는 양적으론 급격히 성장했으나, 내실을 다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각 노동센터 간, 또 상근자 간 서로 다른 생각과 지향점을 다듬는 시간이 부족했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물론 만남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둬서는 안 된다. 만남은 단지 쌓이는 것이 아니라 숙성해야 한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전국 곳곳의 노동센터에 축적된 역량과 성과가 제법 된다. 매일같이 묵묵히 노동자들의 곁을 지킨 결과다. 서울시 노동센터들만 해도 지난해에 2만2천여건의 노동상담을 했다. 한비네는 노동센터들의 역량과 성과를 잘 모아 활용해야 한다. 또 때로는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도 있어야 한다. 착실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영리할 필요도 있다.

과제만큼이나 눈앞에 닥친 위협도 만만치 않다. 지난 대선 및 지선 이후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했다. 서울의 경우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성공했고 국민의힘이 시의회 다수당이 됐다. 그 결과 일방적인 노동센터 예산삭감이 진행되고 있다. 당장 내년을 장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안 그래도 취약노동 계층이 힘들다. 노동센터의 역할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축소하려 하다니. 안 될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센터끼리 더 끈끈하게 연대해야 한다. 한비네의 어깨가 무겁다.

다음달 2일에 한비네 10주년 기념식 및 토론회가 열린다. 위협을 무사히 극복하고 과제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생산적인 이야기가 오가길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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