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주 공인노무사(사무금융노조 법률원)

사무금융노조 소속 지부에서 회사의 인권침해 행위를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겠냐는 질의를 받았다. A금융그룹은 수개 계열사를 보유하면서 여신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각 계열사 내 콜센터 직원들에게만 출근과 동시에 휴대전화를 사업장 출입구에 있는 사물함에 보관하도록 지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가 콜센터 직원들 중에서도 센터장·팀장에게는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고 팀원들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휴대전화가 생필품이 된 현대사회에서 도대체 휴대전화가 없으면 긴급한 연락은 어떻게 주고받을 수 있으며, 업무적으로 필요한 연락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다. 당연히 긴급한 연락은 놓치기 일쑤고, 업무적으로 필요한 연락은 팀장 앞에서 팀장의 휴대전화를 빌려 전화하거나, 팀장에게 부탁하면 팀장이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 업무 내용을 대신 전달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회사 정책에 동의한다는 개별 동의서까지 받아 갔다고 했다. 동의서 내용에는 회사가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책상 서랍, 메신저, 이메일, 개인 휴대전화까지 확인할 수 있고 근로자는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다소 황당한 마음을 추스르고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봤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침해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를 담당하고 있는데 사기업의 경우에는 인권침해는 조사 대상이 되지 않고, 차별행위만 조사 대상으로 한다. 회사는 휴대전화 소지 금지 정책이 고객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는데 여신업을 영위하는 회사 특성상 소속된 모든 직원은 범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개인정보에 접근이 가능하다. 특히 팀장·센터장·임원이라면 콜센터 팀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접근 권한과 외부 전송 권한이 있는데 왜 유독 콜센터 팀원들에게만 개인정보를 유출할 우려가 있다며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위에 직군·직책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시정해 달라고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결정례를 보면 휴대전화 소지 금지에 대해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는 있어도 차별행위를 판단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지만, 일단 인권위 문을 두드려 보기로 했다.

진정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일률적으로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고 사업장 밖에서 얼마든지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고, 직원들에게 동의를 받아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태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휴대전화로 즉시 연락을 받지 못해서 임산부인 직원이 병원 예약이 어렵다거나, 가족이 입원하게 됐지만 연락을 받지 못해 보호자로서 동행이 어렵거나, 가족이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어린 자녀가 코로나에 감염돼 학교에서 긴급히 연락이 왔음에도 연락을 받지 못하는 등의 다양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휴대전화 소지 금지 정책에 동의하냐는 익명 조사에서는 96.8%가 “동의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휴대전화 사물함에 휴대전화가 있는지 관리자가 수시로 확인하면서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은 사유, 예컨대 충전·연차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사물함에 스티커를 붙여서 관리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했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관리자가 발견하면 불러서 질책하는 경우도 다수 확인됐다.

인권위는 이러한 회사 정책에 대해서 직책을 이유로 한 차별임을 인정하면서, 이러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휴대전화 소지를 제한하지 말 것과 향후 유사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현대사회에서 휴대전화는 단지 통신기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생성·유지·발전시키는 도구이자 각종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의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한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센터장·팀장 등은 더 많은 개인정보를 다룰 수 있는데 팀원들이 개인정보를 유출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고 회사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여러 기술적인 장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동종업계에서도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차별행위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권고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인권위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회사가 차별행위 시정 권고를 가볍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곧 우리의 상상력이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회사는 센터장·팀장과 팀원의 차별행위를 해소하기 위해서 센터장과 팀장의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한다는 공지를 전달했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인권침해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인권위 권고가 우습다는 듯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휴대전화 소지 금지 정책에 동의하고 사업장 내에서 휴대전화 사용 적발시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재작성하라고 지시했다. 노동조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시정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라고 항의해도 회사는 막무가내였다. 인권위는 차별시정 권고가 있는 경우 해당 권고를 이행할 3개월을 기간을 준다고 했는데, 이는 권고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피진정인이 기존 차별정책을 폐지하고 권고 취지에 맞는 대책을 수립할 시간을 주는 것이지 인권침해 행위로 차별을 해소할 시간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차별시정 권고 결정문이 송달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업장 출입구에서는 휴대전화 보관함이 자리 잡고 있다. 회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 대화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 회사는 인권위 차별시정 결정에 대해서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지해 놓고 기자가 전화해서 물어보면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둘러대고 있다. 회사의 태도가 예상 가능했다면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았을 텐데 기상천외한 방법을 구사하니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탓하게 된다. 권고에 법적 구속력이 없으니 인권위도 회사가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 외에 뚜렷한 방법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이제 팀원들 외에 관리자들도 휴대전화를 압수당하는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회사의 이상한 아집으로 많은 직원이 고통받고 있다. A금융그룹은 외국계 대부업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사명을 변경했다고 하는데, 사명을 변경할 게 아니라 국내법부터 충실히 준수하는 태도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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