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이번 판결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순간 나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노동자 권리에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해야 하는데, 지난 10일 기자의 질문에 나는 어째서 그렇다고 즉각적으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2019년 9월 서울고법 판결이 선고되고서 피고 서울메트로가 상고했다. 그리고서 3년이 넘었으니 원고들 소송대리인이라도 자세한 사건 내용은 살펴봐야 하겠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메피아’로 지탄받았던 원고들의 이번 대법원 승소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즉각적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번 ‘‘메피아’’의 승리가 노동자 권리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2. ‘메피아’란 말은 2016년 5월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김군 사망사고 직후에 등장했다. 당시 19세이던 김군은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로서 작업시간에 쫓겨, 2인1조로 안전점검을 해야 하는데도 1인1조로 작업을 했다. 사고 발생 직후 김군의 부주의탓으로 몰아갔다가 김군의 열악한 작업조건 등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게 되자 사측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는 직영 전환을 발표했다.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 등 외주업체 업무를 서울메트로가 직접 수행하도록 하고, 김군이 일했던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서울메트로 소속으로 고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당시 엉뚱하게도 과거 서울메트로 소속 노동자였다가 서울시의 외주화 방침에 따라 외주업체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메피아’라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서울메트로에서 근무했던 원고들이 퇴직하고서도 외주업체의 관리자로서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면서, 전관예우의 특혜를 받는 듯이 비난했다. 그리고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는 외주업체에서 신규채용했던 노동자들만 서울메트로 노동자로 채용했고, 과거 서울메트로 노동자였다가 외주업체로 전환해서 근무하고 있던 노동자들은 배제했다. 이렇게 직영 전환되면서 외주업체 소속이던 원고들은 사실상 해고되고 말았다. 이렇게 원고들은 ‘메피아’로 매도되면서 서울메트로에서 쫓겨나야 했다.

3. 도대체 ‘메피아’는 어째서 생겨난 것일까. 2008년 및 2011년께 오세훈 시장 시절 서울시는 지방공기업인 서울메트로에 대해서 ‘비핵심업무의 분사화’ 절차를 추진했고, 이에 따라 외주업체가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권에서 공공기관의 외주화 방침에 따라 단순현장 기능직 등 비핵심업무에 대해서 외주화를 추진했다. 서울시도 서울메트로에서 이를 추진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차량기지 구내운전 업무, 플랫폼 스크린도어 유지 및 보수 업무 등 많은 현장 업무가 외주화됐다. 현장 기능직 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가 비핵심업무로 분류돼 외주화됐던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메트로는 그 업무에 종사하고 있던 노동자들을 외주업체 소속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종전에 서울메트로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서울메트로와 위탁계약을 체결해서 외주업체가 해야 했으니, 서울메트로에서 그 업무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이 외주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것이 요청됐다. 그런데 외주화는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내세운 것이었으니, 외주업체 임금 수준은 서울메트로보다 낮은 것이어야 했다. 여기에 외주업체가 파산과 위탁계약 해지 등으로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고용불안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외주업체에서 근무할 서울메트로 노동자를 모집하려 해도 이에 응할 노동자는 없었다. 이에 따라 전적 회사, 즉 외주업체에서 ‘서울메트로가 연장된 2년 또는 3년의 정년을 보장하고, 연장된 정년 동안 서울메트로 보수 대비 약 60~80%의 보수를 보장’하기로 했고, 이는 외주업체가 파산 또는 위탁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도 서울메트로가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이걸 믿고서 원고들은 서울메트로에서 퇴직하고서 외주업체 노동자로서 근무해 왔던 것이다. 이상이 ‘메피아’의 실체다. ‘메피아’의 근로조건은 서울메트로 노동자로서 고용 및 임금을 포기하고서 기껏해야 2년, 3년 정도의 고용연장을 보장받는 정도여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결코 전관예우로 비난받을 받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현장 기능직 업무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핵심업무로 취급받지 못하는 노동자로서 전적 대상으로서 서울메트로에서 쫓겨나야 했던 노동자였다.

4. 대법원은 이러한 서울메트로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원고들의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 보면 서울메트로는 외주업체와의 위탁계약을 새로이 체결하지 않은 방식으로 외주업체와의 계약관계를 종료시켰다. 이렇게 서울메트로와의 위탁계약 관계가 종료되면서 서울메트로 노동자로 채용되지 않은 원고들은 일자리를 잃게 됐다. 이에 원고들은 외주화 당시 약속, 서울메트로에서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장된 2년, 3년을 포함해서.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기간만료로 위탁계약이 종료된 것이라면서 ‘위탁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원고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원고들은 서울메트로 노동자지위 확인 및 그 임금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는 “이 사건 약정은 서울메트로가 기간만료로 인한 이 사건 위탁계약 종료의 경우에도 원고들의 고용을 승계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인정했다.

지극히 당연한 판결이다. 대법원의 판결문을 읽어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노동자 권리를 확인한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문구 하나만 이상해도 그걸 핑계로 사용자는 노동자 권리를 무시하기 일쑤다. 그래서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물론 이 사건에서는 이런 핑계만 사용자가 주장하고 나온 것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5.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구의역 김군 사고와 관련한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2016년 김군 사망사고 당시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이던 변창흠 장관후보자가 “마치 시장(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람을 죽인 수준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위탁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이라면서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걔만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 문제됐던 것이다. 구의역 김군 사망사고와 2018년 11월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사고 등을 계기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까지 제정했던 인사청문회 당시 상황에서는 장관후보자의 이런 과거 발언이 소환되는 것은 당연했다. 마땅히 그 발언은 비판받아야 했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나라에서는 민주와 보수라는 정권의 색깔을 떠나서 공기업 사장과 장관 등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사건을 통해서 보더라도 분명하다. 원고들이 수행하던 서울메트로 업무 외주화를 추진했고, 이렇게 해서 위험의 외주화가 이뤄지면서 구의역 김군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 사고로 열악한 작업환경 등 근무조건이 알려지자 직영 전환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원고들은 과거 서울메트로 노동자였다는 이유로 배제돼서 서울메트로 노동자로 채용되지 않고 쫓겨나야 했다. 외주화는 오세훈 시장이 추진했고, 이를 다시 직영 전환하면서 원고들의 고용을 보장하지 않고서 쫓아냈던 것은 박원순 시장의 방침에 따라 했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수행하던 업무에서 내쫓아 해고한 것은 박원순 시장이라 할 수 있지만, 외주화로 서울메트로에서 외주업체로 내쫓았던 것은 오세훈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원고들의 승리는 이렇게 두 시장이 원고들에게 저지른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메피아’로 매도해서 원고들을 내쫓았던 것은 근본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과는 그 처지가 다른 노동자라고 원고들을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에서 본 것처럼 원고들은 현장 기능직으로서 자신의 업무가 비핵심업무로 분류돼 서울메트로에서 하찮은 취급을 받아서 전적 대상이 됐다. 처음 만나 소송을 상담했을 때부터 이번 대법원 판결 선고에 이를 때까지 나는, 김군의 처지보다 낫다는 이유로 원고들이 ‘메피아’로 매도돼 해고돼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메피아’로 취급해서 원고들을 해고한 서울메트로의 행위를 정당화할 어떠한 이유도 나는 찾지 못했다. 기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세상은 형편 없다. 보장해야 할 노동자 권리의 수준이 낮을수록 세상은 더 별 볼 일 없어진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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