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힘만 키운 수퍼히어로

지난 4일, 금요일 밤에 현장 노조간부가 불쑥 영상을 보내왔다. 영화에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을 등장시킨 M사와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을 등장시킨 D사를 비교한 4년 전 동영상이었다. M사의 영화에서 아이언맨에게 슈트가 없거나 토르가 망치를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좌절을 거치며 성찰을 통해 다시 일어선다. 그러나 D사의 시리즈는 더 센 악당을 등장시키고, 영웅은 더 힘을 키워 무찌르면서 물리적 힘만 계속 키운다고 한다. D사가 M사보다 흥행에 뒤진 이유란다.

동영상 분석이 정확한지가 핵심은 아니다. 영상을 보낸 이는 공급사슬 상위의 회사에 교섭력이 높은 편에 속하는 노조간부다. 그는 영상을 보내면서 힘만 믿고 이익에 집착하게 될 것을 걱정했다. 힘은 세지만 내면이 빈약하면 금방 기성 노조를 닮아갈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그는 이 점을 떠올린 것 같다. 이렇게 성찰하는 현장 노동자가 나를 일깨우는 사람(기여자)이다. 영상을 보며 내가 왜 노조의 심리적 측면에 주목하는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각종 경제 지표로 보면 한국은 선진국이다. 급속한 성장을 이룬 것이 자랑이지만 시민은 자부심으로 충만할까. 외형적 성장을 했지만 내면의 결핍으로 심리적 질병을 앓는다. 물질적인 힘은 커졌지만 우울증 같은 정신적 취약함이 드러나고 차별, 혐오, 자살 등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인문학적 성찰 노력도 이어진다.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큰 대기업 노조는 물론 재벌 대기업 사용자 내면에서도 결핍을 보았다.

분리불안의 기억

귀족노조 이미지를 가져다 노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노조의 아픈 스토리를 얼마나 알까. 특히 언론이나 기득권 세력의 귀족 타령은 두들겨 패놓고 난 다음에 “너 왜 아프냐”고 하는 것만 같다. 외환위기 후 닥친 고용 빙하기는 노동자를 휩쓸었다. 노동계급의 투사이자 강철대오로 보이던 대기업 노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격한 충격 속에 후퇴했다. “있을 때 벌자”는 심리가 떠돌고 실업 공포가 실리주의와 결합해 일자리 경쟁, 물량 지키기로 퇴행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 손을 놓쳐 미아가 된 경험 때문에 분리불안이 생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부 활동가들은 운동을 멈췄고 아예 회사를 떠난 사람도 있었다. 내면의 결핍은 ‘강자와 동일시’로 이어진다. 넘어서야 할 상대가 너무 강해 보이니 비참한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 강자를 닮는 것이다. 비정규직 위에 군림하는 모습부터 전투적이었던 현장 활동가가 하청기업 사장이 된 사례까지 이어진다. 과거에 통했던 계급적 원칙을 외치며 전투성을 복원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내면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단단했을까. 그들에게서 강철같은 의지보다 상처를 들여다보기 두려워 변화를 부정하려는 가녀린 심리를 느꼈다.

현실은 과거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차이 나는 반복이다. 예전에 없던 구조조정 폭풍이 휩쓸고, 사내하청이 늘고, 외주화도 늘어 공장 밖 무권리 노동자도 늘었다. 과거와 차원이 다른 대응이 필요했다. 계급적 분노에 근거한 투쟁은 실리주의와 결합해 정규직의 이기적 전투로 나타나고, 취약한 비정규직은 계층상승을 위해 격한 투쟁을 했다. 연대는 약해지고 투쟁이 격할수록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도 격했다. 이런 현실을 성찰하고 차원이 다른 대응을 하는 것이 성숙이다. 그랬다면 대기업 노조의 모습은 달랐을 것이고 그들에 대한 시선도 다를 것이다.

‘어른이’ 같은 거대기업

2011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무노조 재벌기업 노동자를 만나면서 ‘유아적 심리를 가진 덩치 큰 어른’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그 재벌그룹에 대해 존경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경외심을 가진다. 그들이 벌어들이는 엄청난 이익을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가진 힘을 두려워한다. 나에게 그들은 겉은 성장해 힘은 세지만 마음은 그만큼 자라지 못한 ‘어른이’ 같았다.

재벌기업의 경제적 기여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불거진 불법과 탈법, 직업성암으로 죽은 노동자를 외면한 것은 미숙한 내면을 보여준다. 내가 만난 그곳 노동자 상당수가 재벌기업에 다닌다는 우월감과 내부 경쟁으로 인한 열등감이 뒤섞여 있었다. 연봉에 대해 비교 우위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고과를 위해 뒷담화를 하다가 드러나 동료끼리 싸우는 일도 있다. 쉽게 사귀는 것으로 보이지만 길고 깊게 사귀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익에 민감하고 인정욕구는 큰데 믿음은 약해 쉽게 돌아서서 관계가 뒤틀리는 일을 겪는다. 사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종종 드러난 재벌 가족의 민망한 사생활에서 내면의 결핍이 보였다.

노동계는 재벌 그룹의 악랄한 노무관리를 규탄한다. 그러나 그보다 우선 주목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 이런 곳에서 통상적인 이익, 즉 임금인상과 같은 것이 노조의 핵심 에너지가 될 수 있을까. 단순한 임금인상을 추구하거나 사측에 대한 적대감을 높이는 식으로 노동권을 확장할 수 없다. 노동자의 내면을 풍부하게 이해하고 심리적 충만함을 채워나가는 차원이 다른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성찰할 때 성숙한다

각종 뉴스를 포함해 일상에서 굉장히 많이 접하는 것은 경제적 숫자다. 성장률, 소득, 연봉, 주가, 부동산 가격, 금리, 환율 등은 매일 뉴스와 일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숫자들이다. 이렇게 선진국으로 진입을 보여주는 찬란한 숫자들 뒤로 사회적 사건들이 터지면 자살률, 빈곤율, 소득분배, 불평등지수 등이 그림자처럼 등장한다.

마음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편이다. 몸은 이미 성장했고, 나이도 많고, 재력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 내면이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 ‘꼰대’다. 내면은 미숙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취약하기에 억압된 인정 욕망을 온라인의 이상한 행동(어그로)으로 드러내는 것이 ‘관종’이다. 타인을 깔보는 우월감과 쉽게 상처 입고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열등감은 모두 내면의 결핍을 보여주는 심리다.

외형의 조직력이나 투쟁력에 집착해 거칠어지고, 내면의 결핍으로 과격했다가 정반대로 꺾이는 노조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물론에서 마음이나 심리를 중시하는 관념론으로 후퇴가 아니다. (물질도 사유한다는 신유물론까지 등장했다.) 사회적·집단적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깊어지는 것이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쥐뿔은 원래 없다. ‘가오’마저 없는 노동자는 쥐뿔도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채우며 자기 문화를 만드는 노조들이 멋지다.

비판은 타인을 향한다. 상대를 깎아내려 자신만의 정당성을 얻는다. 결국은 남 탓이다. 타자에 대한 분노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은 외부에 의존한 운동이다. 성찰은 타자만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자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만들기 위해 더 깊고 강한 에너지를 찾는 것이다. 자존감이 충만할 때,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노동관, 권력이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노조관, 증오와 복종 사이에서 동요하지 않는 튼튼한 노사관을 가질 수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성장한다고 성숙하지는 않는다. 동영상에 나오는 M사 수퍼히어로가 그랬듯이 성찰을 통해 성숙한다.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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