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 참사를 놓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국가의 부재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심지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국가의 부재를 언급한다.

지난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10만명의 노동자가 결집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숭례문 앞길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이 촛불집회에서 사회자는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국가가 책임져라”고 다함께 외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하며, 진상규명 후 잘못한 공직자들은 처벌돼야 한다고 했다. 집회장 주위에 내걸린 현수막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퇴해야 한다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국가가 부재했음을 비판하면서 국정 책임자가 물러나게 하는 것이 능사일까? 먼저 총리 이하 임명직 관료들이 물러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중·동’조차 사설에서 취임 6개월도 되고 지지율도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국정쇄신’ 차원에서 개각을 단행하라고 권고한다. 이처럼 임명직 관료들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면하고 민심을 무마하는 하나의 방책일 뿐, 국가가 책임지는 조치가 아니다. 그들이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는 것은 어떤가.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요구하는 쪽이든 이를 거부하는 쪽이든 모두 이것을 대단한 일로 평가한다. 하지만 대통령 사과를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은 대통령을 국민의 통치자로 바라보는 권위주의적 사고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면 대통령이 퇴진하도록 하면 되는가? 세월호 참사만으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지 않았듯이 윤석열 정권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는 이번 이태원 참사만으로는 근거가 불충분하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도 이태원 참사와 더불어 그동안의 폐정을 한데 묶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윤석열 정권은 0.7%의 득표 차이로 집권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 승리한 장수가 전리품을 챙기듯이 정권을 휘두르고 있다. 첫째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국회 의석 과반을 훌쩍 넘긴 야당이 반대하는 데도 그는 이것을 강행했다. 둘째는 인사권 행사다. 그는 검찰 출신 측근들에게 권좌를 나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검찰기구화’했다.

셋째, 그는 선거 당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는데, 당선 이후에는 이 말은 쑥 집어넣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내세운다. 그런데 그가 내세우는 자유는 상식과 달리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재벌과 자본의 착취와 축적의 자유이다. 자본의 자유를 위해 산재 사망사고가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걸레가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마저 개악하려고 한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도 완화하고, 부정식품 안전 규제도 완화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질서유지에 꼭 필요한 합리적 규제만 남겨 놓겠다”고 한다.

넷째, 그가 말하는 자유는 이승만의 자유처럼 반공 파시스트의 자유다. 북한과의 전쟁을 선동하고 노동자·민중을 탄압하는 자유이다. 그는 경찰국을 신설하고 초대 경찰국장에 보안사 프락치 전력의 인물을 앉혔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퇴진’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유산된 촛불혁명을 떠올린다. 촛불혁명 당시 민중의 박근혜 ‘하야’ 요구는 ‘퇴진’으로, 그리고 ‘탄핵’으로 순차적으로 순화됐다. 이렇게 순화된 합법적 절차를 따라 박근혜는 국회에서 탄핵이 소추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돼 퇴진했다. 하지만 헌법 질서는 하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기존 헌법 질서에 의거한 선거로 보수야당 후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촛불혁명의 배신과 실종이었다. ‘퇴진’ 요구는 이런 실패한 전철의 되풀이를 예고한다.

그 대안은 ‘타도’다. 이것은 기존의 헌정질서와의 단절을 함축한다. 4월혁명 이후에도 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허정 과도정부가 수립되는 한편 헌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기존 헌정질서와 단절하지 못한 결과 권력은 민중에게 주어지지 않고 한민당의 후신인 민주당에 주어졌다. 그리고 혁명은 배반당했다. 이런 실패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파쇼헌정은 중단돼야 한다. 구정권이 물러간 후에 들어서는 과도정부는 기존 국가 관료에게 맡겨질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해서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참답게 민주적인 헌정질서를 세우기 위해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새 헌법에 의해 의회와 행정부 및 사법부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국가를 개조하는 급진적 전망이 없이는 지옥 같은 현실을 타파할 수 없다.

“국가가 부재했다” “국가가 책임져라”는 비판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원인을 캐묻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우리 국가가 원래 그런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는 분단과 예속 질서 하의 국가다. 이같은 질서 하에서 어느 정권하에서나 ‘파쇼통치’가 국민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파쇼통치체제가 사회구성체의 토대인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예속의 질서를 타파해야 하고, 분단과 예속의 질서를 타파하려면 이 파쇼통치체제부터 타파해야 한다. 파쇼통치체제를 타파하려면 헌법 자체를 새로 제정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니 노동악법이니 하는 파쇼악법을 두지 못하게 헌법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 또 국정원을 해체하고 검찰, 경찰, 법원 같은 파쇼통치기구들을 민중의 밑으로부터 통제를 받도록 못 박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파쇼통치의 물적 토대인 천민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변혁해야 한다.

이런 급진적 전망 없이 윤석열 정권 퇴진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부패하고 기만적인 더불어민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자는 얘기다. 다당제를 하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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