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오후 6시34분 그리고 122건.’ 156명의 시민이 거리에서 죽음을 마주하기 이전에 거리의 위험을 알리는 최초 신고시간 그리고 총 신고 횟수다. 이 두 숫자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글의 첫 문장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물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비극적인 참사에 국가의 책임과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누구도 일상의 공간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살아가지 않기에, 그리고 이 막연한 믿음은 ‘국가’ 또는 ‘사회’라는 무형의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그렇다. 제주도를 향하는 세월호에 탑승했던 이들도 ‘가만히 있으라’는 시스템을 신뢰했기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탑승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 가운데 수많은 시민이 분노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이게 나라냐”는 질문과 함께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들었고 국가와 정부의 책임을 물었으며 그 책임으로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후 적폐를 청산해 정상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정부가 지난 5년의 시간을 관통했다. 하지만 그 정부는 통치에 무능했고, 자신의 위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정권을 다시 넘겨주게 됐다.

5년이 지나 정권이 교체됐고, 새로운 대통령과 세력이 정권을 인수인계받았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나 또 참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6시34분 그리고 122건이 보여주는 현실은 세월호 이후 8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게 다시 이태원을 마주하게 됐다.

여당은 스스로의 책임을 이야기해야 함에도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일선 경찰관들 그리고 구급대원들의 죄를 묻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다. ‘86’ 그리고 ‘개딸’로 대표되는 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참사의 정부 책임을 이야기하며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 먼저 반성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위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 정권을 다시 넘겨준 더불어민주당도 연일 남 탓 정치를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한편으로는 거리에 나와 촛불을 든다. 정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갈등은 필요하며 균열을 통해 분출되는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은 우리를 다음으로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지금 정치의 가운데에 있는 그 누구도 ‘나’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동료 시민들이 이렇게나 황당히도 죽음을 마주했음에도, 그 누구도 내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이가 없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민들은 짙어지기만 하는 냉소 가운데 어떤 리더십에도 마음을 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거대한 슬픔을 개인들이 위로하고 있다. 시민들의 가슴속 울분을 담아낼 정치가 과연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정치는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체감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비극은 ‘산업화’의 열정과 ‘민주화’의 열정의 뜨거움이 2022년에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 불모의 흥분상태가 되어 ‘시민’을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것이 지금의 것을 대표할 수 없음이 명확함에도 지금의 것을 대표할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청년유니온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니 다음의 사회, 앞으로의 사회를 가장 오래 살아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가지는 명확한 것 같다. 기성의 권력에 스스로의 결자해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기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세력으로서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어떤 열정과 질문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마주할 것인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참사와 수많은 죽음들 앞에서, 불안함에 앞에서, 그리고 불평등이 심각하고 격차가 벌어지는 가운데 서 있는 우리는 한국 정치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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