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고용노동부는 2019년 8월8일 ‘법령 위반으로 발생한 사고의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만들어 근로복지공단에 시달했다. 공단은 그해 10월1일자로 같은 내용으로 지침을 전파했다. 당해 기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의 법리를 몰각하고, 20만원 이하 벌금에 불과한 도로교통법 위반 사고를 산재보험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후 3년의 기간이 지난 이후 다수의 판결이 나오게 됐고 대부분 공단이 패소했다. 그중 확정된 공단 패소 14건의 판결과 공단 승소 1건의 판결을 살펴보고, 소위 범죄행위 교통사고 판결의 의의와 향후 과제를 모색해 본다.

첫째, 15건의 판결 중 대법원 판결은 모두 10개였다. 이 중 6개는 산재보험법에 대한 판결, 나머지 4개는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판결이다. 전자 6개 중 교통사고 사망 사건 판결은 대법원 2개(대법원 2019두33835·대법원 2021두33845)다. 대법원 2019두33835 판결은 적색 신호 위반 오토바이 사고가 산재로 인정된 고법 판결에 대한 상고기각 판결이다. 대법원 2021두33845 판결은 출근 중 졸음운전으로 중앙선 침범으로 사망한 사건의 대전고법 2020누108989판결의 상고기각 판결이다. 대법원 2016두55919 판결과 대법원 94누8547 판결은 폭행 행위 시 인과관계에 대한 판결이며, 대법원 2016두31272 판결은 회식 중 재해 판결이다. 결국 대법원이 교통사고에서 범죄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등 법리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제시한 판결은 아직 없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인용된 대법원 판결 중 국민건강보험법 관련 판결은 법리적으로 진화되고 있다. 초기 대법원 89누2295판결은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법 42조1항의 범죄행위’의 의미에 대해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라고 봤다. 대법원 90누752 판결은 ‘의료보험법 41조1항의 범죄행위’의 의미에 대해 “형법상 범죄행위뿐만 아니라 특별법령에 의해 처벌되는 범죄행위”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이후 대법원 2002두13079 판결에서 “오로지 또는 주로 자기의 범죄행위”임을 다시 확인한 후, 최근 대법원 2020두41429 판결에서 “국민건강보험법 53조1항1호 수급권 제한 사유 중 중대한 과실 요건은 엄격하게 해석·적용해야 한다”며 “교통신호 위반 사정만으로 중과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으며, 그 사고가 발생한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교통사고 방지 노력 등과 같은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셋째, 판결들은 국민건강보험법 및 산재보험법에 대한 대법원의 선행 판결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산재보험법 선행 판결로 인용되고 있는 것은 대법원 2016두55919 판결이며, 범죄행위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판시한 판결이다. 이후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한 대법원 2020두41429 판결이 나온 이후, 대법원이 이를 사실상 인용해 판결(대법원 2022두30072)하거나 1심(서울행법 2021구단3595, 서울행법 2021구합71526)부터 이에 근거해 판결하고 있다.

다섯째, 판결들은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기준과 달리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과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 차이를 분명하게 판시하고 있다(서울행법 2019구합76146·서울행법 2020구합64743·서울행법 2021구합71526·서울행법 2021구단70243·대전고법 2020누10898 등). 특히 서울고법 2021누58150 판결은 산재보험법의 기능과 취지가 불의의 재난을 대비하고 노동자의 생활보장에 있으며 “범죄행위를 일률적으로 업무상 재해에서 부정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이라고 판단했다.

여섯째, 근로복지공단은 중앙선 침범·신호 위반·무단횡단 등을 일률적으로 도로교통법 또는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의 범죄행위로 봤으나 법원은 구체적 사고 경위, 발생원인 등을 보고 판단한다.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없거나 경과실의 범죄행위인 경우(대전고법 2020누10898), 신호 위반은 있으나 사고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는 경우(서울행법 2019구합65986·서울행법 2020구합64743), 범죄행위가 업무와 사고와의 상당인과관계를 단절시킬 정도가 아닌 경우(전주지법 2019구단842), 피고가 중앙선 침범의 구체적 경위·내용·주의의무 위반 정도를 입증하지 못한 경우(서울행법 2019구합76146), 사고의 원인이 오로지 또는 주로 피해자의 원인이 아닌 경우(서울행법 2019구단75016·서울행법 2021구합71526), 과실이 있더라도 운전과정 중 통상적인 위험 범위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서울행법 2020구합61454 판결), 범죄행위의 위법성과 비난 가능성이 부상 등과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을 정도가 아닌 경우(서울행법 2021구단70243)는 업무상 재해로 판단했다.

결국 법원 판결로 봐도 공단은 사고의 발생 경위, 원인, 운전자의 상태와 능력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하지 않은 채 도로교통법 위반, 교통사고처리법 위반의 중과실 “범죄행위”로 단정해 불승인을 남발하고 있다. 노동부와 공단은 업무 중 사고를 겪거나 사망한 노동자를 반사회적 개념인 ‘범죄자’로 간주하고, 사회보험의 취지를 훼손하는 부당한 행정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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