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유엔 기후총회가 지난 6일 이집트에서 개막했다. 지난해와 달리 총회 분위기는 우울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경제위기, 에너지 대란 등 악재가 산적한 탓에 어느 나라도 자신 있게 기후위기 대응 얘기를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기후총회 때 합의했던 ‘2030년 기후 목표(NDC) 상향’을 이행한 나라도 193개국 가운데 26개국에 불과하다.

올해 총회의 핵심 의제는 ‘손실과 피해’다.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은 가난한 나라들이 선진국이 지금까지 배출한 온실가스 탓에 큰 손실과 피해를 보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우 올해 7~8월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고 피해 규모가 55조원에 달했다. 아프리카의 여러 저소득 나라들도 가뭄과 홍수가 이전보다 빈번하게 발생해 피해가 급속도로 누적되고 있다. 이들 나라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선진국의 10%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는 선진국보다 크다.

사실 이 문제는 십수 년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이긴 하다. 2020년부터 매년 1천억달러씩 지원한다는 합의도 해 놓았다. 그러나 누가 얼마를 부담할지에 관한 합의가 부재하다. 특히 누적 탄소배출량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이 소극적이다. 21세기 들어서 세계 1위 탄소배출 국가로 올라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두 나라가 주저하니 다른 선진국도 눈치만 본다.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하는 탓에 합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에너지 위기, 미국과 중국의 갈등 등으로 올해 총회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파토’ 분위기였다. 유럽의 중심인 독일과 영국은 탄소제로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올 겨울 석탄이든 나무든 닥치는 대로 태워야 할 판이다. 신냉전이란 말이 나오는 현재, 기후위기에 관한 지구적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규제는 무임승차를 막아야 실효성이 있는데, 현재는 탄소를 배출하면서 기후대책 비용은 지불하지 않는 무임승차 나라가 너무 많다. 무임승차 나라를 실질적으로 규제할 국제기구도 없다. 자발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여서 지구에 기여하라는 도덕적 호소는 당장의 생활고 앞에서 힘을 잃는다.

현 인류의 지적·윤리적 역량에 비춰 볼 때 2030년 탄소배출 50% 감축, 2050년 탄소제로 도달은 점점 더 불가능해 보인다. 올해 기후총회는 인류의 한계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 같다. 기후재앙의 위험에 관해 윽박지르고 협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새로운 국제질서 없이는 기후위기 대책은 작동하기 어렵다. 절대적 전제 조건이다. 20세기에는 두 번의 세계전쟁을 치른 후에 냉전과 유엔이라는 질서를 만들었다. 21세기 초에는 무역·금융 규칙을 중심으로 세계화라는 질서를 만들었으나 세계 금융위기, 미·중 무역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그 다음 질서가 필요한 때인데, 그 다음이 무엇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한편 기후위기 대책의 핵심인 미국의 경우 탄소배출 규제보다 친환경 에너지산업 육성에 초점을 두는 모양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친환경 에너지 법안에는 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포함돼 있지 않다. 탄소배출에 패널티를 주는 게 아니라, 저탄소 전기 생산과 사용에 인센티브를 주는 구조다.

법안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보다 재생에너지 또는 저탄소 에너지가 화석연료 에너지와 아직까지는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탄소세가 작동하려면 탄소에 가격을 부과하면 친환경 에너지가 경쟁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발전량도 적고, 생산비용은 너무 크다. 탄소세 수준으로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미국 바이든 정부는 친환경 에너지산업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시장 중심으로 탈탄소 전략이 이뤄지려면 발전량을 대폭 늘리고 생산비를 어느 수준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 계산이다.

규제로 탄소배출을 막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는 바이긴 하다. 예로 메이저 석유 회사들이 탄소배출 규제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을 팔고 있는데, 그 유전을 구매하는 기업들은 환경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비메이저 업체)이다. 최근 몇 년간 석유 거래에서 탄소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유전에서 배출하는 탄소는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증가했다.

한국의 탈탄소 계획은 뒤죽박죽이다. 제대로 합의된 게 없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방지책도 여전히 모호하다.

올해 여름 서울이 폭우로 잠겼다. 현재의 도시 인프라로는 극단적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 집약적 발전의 필수 조건이 도시화고, 그 도시화를 가능케 한 것이 상·하수도와 같은 인프라의 발전이었다. 기후위기가 현재 같은 속도로 이어진다면 거대 도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뭄과 홍수, 폭염에 견딜 수 있는 인프라일 것이다. 서울시가 겪어야 할 재난은 올해는 홍수였지만, 내년에는 가뭄일 수 있다. 도시의 근본적 기후위기 대응 역량이 쟁점이 될 것이다.

탈탄소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기후변화는 수십 년간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에 견디는 인프라를 만들지 못하면, 특히 인구와 자본이 소수 도시에 밀집한 한국 같은 나라는 더 이상 발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국제적 협력이 이완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다. 각자도생이라고 할 수 있는 기후위기 적응 대책이 절실하다.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 저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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