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8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 ‘사용자’ 정의를 현실화하는 것을 포함한 노조법 2·3조 개정 5만 국민동의청원이 완료됐다. 국회청원을 시작한 지 8일 만에 5만명 동의 완료라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했던 화물연대, 대우조선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 성과이기도 하지만 ‘근로자’ ‘사용자’ 정의 개정 요구가 지난 20여년간 숙원사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보정당이 최초로 국회의원을 배출한 17대 국회 이후 현 21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들이 매번 제출됐다. 그러나 특수고용노조 공동파업이 이루어졌던 2012년을 제외하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국회가 책임을 방기한 20년간 ‘가짜 자영인’이라 할 특수고용은 통계상으로도 4배 이상 늘어나 2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국회와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꾸준히 노조를 조직하고 투쟁했다. 현재 민주노총 조합원의 약 35%가 비정규직이며, 단체행동을 가장 활발히 하는 곳도 비정규직이 많은 노조다. 비정규직을 조직한 노조가 파업·농성 등 투쟁으로 내몰리는 주요한 이유는 실질적 사용자와 대화와 교섭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교섭은 회피하면서도 계약해지는 자행하는 ‘진짜 사장’을 교섭 자리로 불러오기 위해 노조는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 온갖 투쟁과 소송 과정을 버텨야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았던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으로 전향적인 대법원 판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노동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영향력을 가진 사업주도 노조법의 사용자라는 2010년 판결이나,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사업주에게 종속돼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노조법의 근로자라는 2018년 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이번에 국민청원을 한 노조법 개정안은 이런 판례의 기준을 명시적 문구로 풀어쓴 수준에 불과하다. 현행 판례 법리를 굳이 개정안에 담아야 했던 이유는 바로 고용노동부 때문이다.

노조법의 근로자는 근로계약상 근로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에도 노동부는 노조 설립신고제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용하면서 사업주가 특수고용 노조와의 교섭을 회피할 빌미와 기회를 제공해왔다. 문재인 정부하에서 3년 만에 설립신고증을 받은 대리운전노조가 대표적 사례다. 1999년부터 노조를 설립한 학습지 교사들이 노조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는 데 19년이 걸렸지만, 2018년 판결 이후로도 학습지 회사들은 교섭을 거부하며 소송만 고집했다. 이런 말려 죽이기식 부당노동행위에 노동부는 뒷짐만 질 뿐 교섭 촉진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 미국·유럽연합(EU)의 행정부가 근로자 오분류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을 위해 법제를 개선하고 있는 것에 견주어 보면, 책임방기를 넘어서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노동부는 노조법의 사용자 책임을 정상화하는 것에 관해서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 중앙노동위원회가 2010년 대법원 판례법리에 따라 CJ대한통운이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와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결정하자, 장관이 앞장서 “중노위 결정은 현행 판례와 배치된다”는 일방적 견해를 발표하기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2006년부터 하청·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법제를 개선하고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감독하라고 수십 차례 권고해 왔지만, 노동부는 그동안 ILO의 권고를 무시해 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9년·2019년·2022년 노조법의 사용자 범위를 판례와 국제노동기준에 맞게 확대할 것을 권고했지만, 노동부는 ‘불수용’ 입장으로 일관해 왔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국민청원된 노조법 개정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어렵게 쟁취해 온 것들이 유실되는 것을 막고,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이 비정규직에게도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하며, 통상 가장 변화가 느릴 수밖에 없는 대법원도 인정한 법리들을 명문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개별 노조가 대법원 판결을 받아올 때까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뒷짐만 지고 있는 정부의 직무유기에 제동을 걸기 위한 법 개정 요구일 뿐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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