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다솜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지시명령을 위반하고 점검실적이 저조해 근로계약의 기본의무를 위반했다. 반성하는 태도 없이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해 일벌백계해 엄중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몇몇 도시가스 고객센터가 안전점검원들에게 보낸 징계통지서의 내용이다. 안전점검원은 주로 가스 검침 및 점검, 요금고지서 송달 업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서울시가 정한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명시돼 있는 하절기 격월검침 제도를 따르고, 코로나19 대비 가스점검 이행수칙을 정한 서울시 지침에 따라 점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서울시민에게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안전을 관리하는 도시가스사업의 구조는 기이하다. 도시가스는 국민 생활에 필수적이고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어 이에 관한 사항을 법으로 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각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감독을 하고 있음에도 도시가스 공급주체는 민간기업이고, 심지어 안전을 관리하는 주체는 하청업체인 고객센터다. 도시가스사업법은 가스요금, 안전 등에 관한 ‘공급규정’과 ‘안전관리규정’을 정해 지자체에 관리 책임을 부여하고, 고객센터는 이를 따르도록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관리주체인 서울시가 단순 지도에 그치지 않고 고객센터 운영 전반에 구체적·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도시가스회사 공급비용 산정기준’에 따라 고객센터의 지급수수료를 산정하고 있어, 결국 안전점검원의 임금을 결정하고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객센터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실제 근로조건에 관한 요구을 전하면 서울시 결정이 우선이라는 식의 입장을 내놓기 일쑤다.

고객센터는 “서울시 공문이라도 가져오면 임금을 주겠다”며 서울시를 앞세우면서, 유독 안전에 관해서는 서울시 지침은 단순 권고라며 선을 긋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 6월 안전점검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급규정을 개정해 주택용 사용자에 대해 하절기(6~9월)에는 격월로 검침할 수 있도록 하고, 매년 이를 실시할 것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징계를 행한 고객센터들은 단 한 달이라도 격월검침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격월검침 결정권은 사용자의 경영권에 속한다며 시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33℃를 넘지도 않고, 수분보충을 위해 2만원 상품권을 지급했다”며 자신은 사용자 책임을 다했지만 근로자들이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매도했다. 그러나 여름철 옥외작업은 체감온도·습도·자외선지수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안전점검원은 매월 1인당 3천600여세대를 돌며 종일 야외검침을 수행하는데 단지 물 몇 병으로 사용자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한 이래 감염 확산세에 따라 서울시는 수차례 대민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스점검 이행수칙을 지침으로 내렸고, 고객센터는 이를 따라왔다. 방문 전 비대면 사전조사를 통해 점검 희망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고객에 한해 직접 찾아가 점검하도록 한 것이다. 무응답 고객의 경우 코로나19 자가격리자·밀접접촉자·기저질환자 등에 해당할 수 있으므로 안전점검원과 시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사전 연락 없이 방문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했다. 이러한 서울시 지침은 현재도 유효하고, 코로나19는 다양한 변이를 거쳐 재유행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고객센터는 실적만을 앞세워 무응답 고객에게도 세 번 이상 방문할 것을 요구했다. 안전점검원은 사용자가 지켜 주지 않은 안전을 위해 서울시 지침에 따라 무응답 고객에게 수차례 점검의사를 확인했는데, 고객센터는 직접 방문하지 않아 실적이 저조하다며 정직 처분했다.

하절기 격월검침과 코로나19 대비 점검수칙에 관한 서울시 지침은 모두 안전점검원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고객센터는 관리·감독기관인 서울시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근로자의 안전권을 침해해 근로계약상 안전배려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2만원짜리 상품권으로 혹서기 대비를 하고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임에도 상황을 알 수 없는 무응답 고객에게 무조건 방문하라는 비상식적 지시를 내렸으며, 최소한의 안전조차 지켜주지 않은 책임에 대한 반성 없이 오히려 근로자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안전점검원들에게 보낸 징계통지서를 이렇게 수정해서 반송한다. “관리·감독기관인 서울시의 지침을 위반하고 근로자의 안전권을 침해해 근로계약의 기본의무를 위반했다. 반성하는 태도 없이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해 일벌백계해 엄중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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