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민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지난 7일 월요일은 입동(立冬)이었다. 새로운 계절은 피어나고 한 해는 저물어 간다. 끝은 시작과 닿아 있고, 피어나고 저무는 일은 이어져 있으나 마음에 닿지 않는다. 피어나는 것보다는 저물어 가는 것에, 돌아오는 무엇보다는 떠나가는 무엇에 마음의 무게가 기운다. 월요일 한낮의 볕은 온화했다. 아픈 지구에서 마주하는 '겨울의 시작'은 비교적 따뜻했지만, 계절과 기후에 상관없이 내내 서늘하고 시린 날들을 살아간다.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 모두를 함께 기억한다. 소중한 이들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친 모든 분들의 치유와 평안을 함께 바란다. 우리의 슬픔과 기억이, 비통한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다투고 구현할 수 있는 연대로 연결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에서는 새로운 한 해의 달력을 만들고 있다. '노동일력'이라는 이름으로 365일 하루 한 페이지, 지역과 전국의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마음들을 담은 문장과 함께,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할 날들을 적어 두려고 한다.

어떤 날들을 함께 기억해야 할까. 노동사회운동의 역사적 투쟁들, 어떤 승리, 어떤 패배, 저마다의 상흔들과 날마다의 죽음들.

노동일력에 담을 날들을 가늠하느라 오랜만에 민주노총 열사추모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홈페이지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달마다 정리돼 있었던 노동열사에 대한 기록들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두 해 전 겨울에 확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11월에만 36명 노동열사의 삶과 죽음이 기록돼 있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에서 운영하는 웹페이지를 살펴보면 11월 51명의 죽음들을 함께 기억하고 있다.

노동자가, 시민이, 누군가가 죽고 다치지 않은 날이 있을까. 달력마다 빼곡한 죽음의 기억과 기록들은 지나간 어느 엄혹한 시절의 회한이 아니라 여전히 거듭되는 우리의 현재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3분기 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51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눈을 떠 마주하는 고장 난 세계의 소식들 사이에서 발견하는 매일의 참사. 저마다의 고유한 세계가 매일 저물어 간다. 일상이 된 사회적 재난들 사이, 매일 일과 삶의 현장에서, 일상의 한복판에서 숱한 이들이 목숨을 잃고 몸과 마음을 다친다.

지난달에는 드물게, 동지들의 얼굴에 마음으로부터 웃음이 피어난 날도 있었다. 지난달 27일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이 현대차와 기아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했다. 대법원은 현대차·기아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간접공정 노동자도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1년 소송을 시작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같은날 오후 센터에서는 지역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400여명 사내하청 노동자 중 한 사람으로, 지난 10년 넘게 지역에서 투쟁을 이어 온 동지도 있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 승소를 축하하기 위해 한 동지의 제안으로 케이크를 준비했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준비했던 두 개의 케이크, 두 개의 촛불을 마주하고 한 동지가 이런 말을 했다. 케이크 하나는 승소한 동지들을 위한 것, 또 다른 하나는 박정식 열사를 위한 것. 박정식 열사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아산사내하청지회 사무장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앞장서다 2013년 7월15일 세상을 떠났다.

어느 날의 승리, 지난날의 패배, 매일의 죽음, 날마다의 비극들 사이 어지러운 마음들, 회한과 다짐들을 함께 기억하고 함께 나누고 싶다. 두 개의 케이크, 두 개의 촛불을 마주한 기억과 마음들이 더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일과 삶의 현장에서 생을 잃고 저물어 가지 않는 사회적 관계를 향하는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기를 함께 바란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 정책기획팀장 (recherche@cnnodo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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