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일 공인노무사(노무사사무소 별)

얼마 전 러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간이대지급금 수령에 관한 상담 의뢰가 있었다. 노동자는 노동지청에서 체불확인서를 받았고, 근로복지공단은 간이대지급금 지급도 결정했다. 러시아로 귀국했다. 부인은 한국에 남아 있었지만 간이대지급금을 받을 수 없었다.

전쟁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나토를 지원하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거래도 금지된다. 임금채권보장법은 엄격하게 간이대지급금의 본인 계좌 수령을 정하고 있고, 시행령에서 ‘부상 또는 질병’의 경우 가족이 위임 수령할 수 있다고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한국에서 본인계좌를 개설할 수 없고, 해외 본인계좌로도 간이대지급금 수령이 불가능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본인이 현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뢰받은 사안은 임금채권보장법 시행령이나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의 예외에 해당하는 사례는 아니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전쟁은 우리 곁에 있었구나!’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진영을 막론하고 노동계급이구나!’

전쟁은 우리 노동계급 곁에

푸틴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9개월이 다 돼 간다.

두 진영 노동계급이 겪고 있는 고통과 피해를 내가 접한 간이대지급금으로 국한할 수 없을 것이다. 푸틴의 공격으로 수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우크라이나인 수백 명이 난민으로 주변국을 떠돌고 있다.

전선에서는 수많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병들이 전사했다. 이들은 “군복 입은 노동자”들일 뿐이다. 푸틴은 동원령을 내렸고, 러시아 청년들은 필사적으로 징집을 피하고 있다. 그런데도 푸틴은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고,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노동자들만 피해 보는 것도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노동계급 생계비 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에너지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고, 임금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있다. 각국 정부의 대응이라는 것은 고작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할 금리인상뿐이거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는 것이다.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의 투쟁 등이 이 전쟁과 무관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주적은 국내에

그러나 전쟁의 성격에 대한 혼란이 존재하는 듯하다. 흔한 견해로는 푸틴에 맞서는 것만 강조하면서 미국과 나토의 개입에 침묵하는 것이 있고, 서방에 맞서 푸틴을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전쟁은 푸틴을 비롯한 러시아 지배자들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패권 경쟁의 산물이고,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노동계급일 뿐이다.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서는 제국주의 지배자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자국 진영의 지배자에 맞서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나토의 편에서 경제제재에 동참하고 있고, 군수물자를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참혹하리만치 무관심하고 무능했던 정부가 말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의 심장부에서 제국에 맞서 투쟁할 것을 선동하며 처형당했던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소름 돋도록 선명한 주장처럼. “주적은 국내에 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직전에 쓴 브레히트의 시는 여전히 옳다. 당시 브레히트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전쟁”이었겠지만, 그 이후로도 그리고 지금 일어난 전쟁에서도 말이다. 저들의 전쟁일지를 우리 노동계급의 해방일지로 갈아치워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아니다. 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전쟁이 일어났었다.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승전국과 패전국이 있었다. 패전국에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승전국에서도 역시 하층 서민들은 굶주렸다.” (1936/37년) (<앞으로 일어날 전쟁은> 브레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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