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지난달 27일 대법원이 현대차·기아의 간접공정·2차 사내하청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하자 재계는 국민(소비자)을 상대로 ‘제품 가격 인상’을 협박하고 나섰다.(매일경제 11월3일 16면 “2차 사내하청 직고용 판결 재계 ‘제품 가격 인상 우려’”)

재계는 그동안 사내하청을 남발해 많은 이익을 챙겼지만, 법원 판결로 쉽지 않아지자 곧바로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재계가 불법파견 판결을 받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겠다고 발 벗고 나선 것도 아니다.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부품 제조기업인 현대모비스는 이달 모듈생산 계열사인 ‘모트라스’와 부품생산 계열사인 ‘유니투스’를 설립한다. 여기저기 늘린 하청사를 정리하고 자회사로 흡수하겠다는 의도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도로공사 등 공공기관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서 ‘자회사 방식’을 허용하자 재벌 민간기업이 그대로 배운 셈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안다. 자회사는 빛 좋은 개살구다. 문재인 정부도 공공기관에 자회사를 세워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해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회사는 하청회사와 다르지 않았다. 결국 간접고용의 고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재벌답게 이런 눈속임을 재빠르게 배운다.

매일경제의 관련 기사 어디에도 노동자 목소리는 없다. 경총 노동정책본부장과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 목소리만 담았다.

정부가 50명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시점을 늦추려는 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가만 있는데 기획재정부가 나서서 노동부에 이런 의견을 전달했다.(한겨레 11월3일 13면 “‘50인 미만 적용유예 연장·처벌 제외’ 기재부 중대재해법 ‘반노동적 의견’”)

누구를 위한 기재부인지 모르겠다.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중대재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도 법 제정 때 사용자 지불능력을 고려해 적용 시기를 대기업보다 연장해 줬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더 연장하고 사용자 처벌은 아예 하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 기재부가 사용자를 위한 부처임을 만천하에 표명한 셈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기재부에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침묵했지만 같은 날 노동부 장관은 <매일경제> 지면에 나와 “전투적 노동운동이 시대에 안 맞는다”고 일갈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 건지. 요새 전투적 노동운동이 어디 있나.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도 농심 라면공장에서 팔끼임 사고가 발생하는 등 산재는 계속되고 있다.(동아일보 11월3일 12면 SPC 이어 농심 라면공장서 팔끼임 사고)

학교급식 노동자 18%가 폐질환을 앓고 있다는 뉴스가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 1면에 ‘학교급식 종사자 18%가 폐질환’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전국 시·도교육청이 급식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검진 전수조사에서 나온 결과다. 현재까지 검진을 마친 8천946명 가운데 1천634명이 폐에 이상이 있었다. 모집단이 워낙 커서 통계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요리를 선호하는 학교급식 관행 때문에 노동자들이 폐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는 미국 뉴욕에선 대형 레스토랑에 요리매연 저감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고 밝혔다. 미국 사례까지 나열하지 않아도 저감시설 의무화는 시급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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