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경찰청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일선 파출소를 포함한 전방위 감찰을 시작하면서 일선 경찰관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참사 발생 당시 시민들이 수차례 112에 신고했는데도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경찰청이 후속조치에 나섰다. 그러나 경찰 일각에서는 경찰 수뇌부가 책임을 전가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기동대 지원’ 묵살 “최선 다했다”
“파출소 인원 20명이 통제 불가능”

2일 경찰에 따르면 ‘이태원파출소 직원’이라고 밝힌 A씨는 경찰청 내부망에 “현장직원 감찰을 반대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당시 휴무였던 A씨는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자정께 출근해 현장에 나왔으나 통제를 무시하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기동대 경력’ 지원요청도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핼러윈 대비 당시 안전우려로 인해 용산서에서 서울청에 기동대 경력 지원을 요청했으나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이태원파출소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근무했다”며 “112신고 11건 중 4건만 출동하고 나머지는 상담 안내로 마감했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신고자에게 인파 안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귀가하라고 안내했기에 해당 내용으로 마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수 인원만으로 구름 인파를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 사고 당일 이태원파출소 야간 근무일지에 따르면 파출소 가용인력은 20여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출소 인원만으로 인파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게 경찰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 같은 성토가 이어졌다. 20대 후반 경찰관인 A씨는 “경찰의 잘못도 일정 부분 있지만, 그것은 경찰 윗선의 잘못이지 현장 경찰관의 잘못은 아니다”며 “이태원파출소 근무자들은 그날 죽을 듯이 일했지만 돌아온 것은 ‘조직 수뇌부’에 대한 비판이 아닌 ‘경찰관 전체’에 대한 비난”이라고 말했다.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했던 경찰의 가족이라고 밝힌 B씨도 “밤새 심폐소생술을 하고 사람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고생했는데, 정작 경찰 너희들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최선을 다해 윗선 지시대로 일했는데 막상 문제가 생기니 나부터 징계받는다고 생각해 보라.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용산서장 경질, 압수수색
“꼬리 자르기로 책임 회피 안 돼”

경찰 수뇌부의 사전통제가 없었다는 것은 일선 경찰들의 중론이다. 경찰관 직무집행법(5조)에는 ‘극도의 혼잡’이 있을 때 경고나 피난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보고를 받은 경찰관서의 장은 관계기관의 협조를 구하는 등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사고 발생 1시간21분이 지나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은 책임론이 불거지자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이날 경찰청이 이임재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데 이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오후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을 압수수색했다. 수사 인력을 동원해 112신고 관련 자료와 경비 계획 문건 등을 확보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청이 늑장 대응 논란을 ‘꼬리 자르기’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신쌍수 국공노 경찰청지부 위원장은 “사고 직후 정부가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니 분노와 저항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에 경찰 지휘부가 인파 통제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책임이 가장 크다”고 비판했다.

김영식 서원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일선 경찰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장 업무는 충분히 이뤄졌다고 본다”며 “지금 시점은 핼러윈 축제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진상을 조사하는 것이 우선인데, 감찰조사를 통해 현장 경찰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꼬리 자르기’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참사 닷새째인 2일 서울 이태원역 1번출구 앞을 찾은 시민들이 꽃과 편지 등을 두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이태원 참사 닷새째인 2일 서울 이태원역 1번출구 앞을 찾은 시민들이 꽃과 편지 등을 두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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