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1.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의 투쟁

현대제철 당진공장에는 약 4천명의 정규직과 1만명의 비정규직(자회사·하청 등)이 있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금속노조는 충남지부 산하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금속노조는 오랜 기간 싸워 일정 성과를 얻어 가고 있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을 시정하라는 취지의 시정명령을 현대제철에 내린 것, 다른 공장에 대해 이미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해 여름 현대제철은 자회사 전환 방침과 사내하청업체들의 폐업 방침을 밝혔다. ‘자회사 전환’을 위한 조건은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하고 다시는 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책임한 태도였다. 노동자들은 반발해 집회와 파업을 진행해 현대제철에 대화와 교섭을 요구했다. 53일의 파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잠시나마 기뻐했다. 그리고 소장이 송달됐다.

2. 대화 요구에 대한 답변은 손해배상 청구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냥 현 상태만 유지시켜 달라.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 그에 따라 고용관계를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대화에 나오라고 말했을 뿐이다. 심지어 적법한 파업 외에는 생산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파업과 농성이 끝나고, 현대제철은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화는 없고, 소송만 남았다.

3. 반박의 개략적인 내용과 걱정

현대제철의 청구에 대한 우선 중요한 반박은 손해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과 손해와 불법행위 사이의 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제철측의 명확한 주장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반박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어떤 손해와 인과관계가 주장될지 몰라 노동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노동자들의 행위가 적법했다는 것은 소중한 주장이고 치열하게 다툴 예정이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앞의 두 쟁점보다는 덜 중요한 주장이다. 그리고 이 점이 논의되고 있는 ‘노란봉투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담당 변호사 중 한 명으로서, 당연히 노동자들의 행위는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자며 집회를 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파업을 하는 것이 불법행위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법원의 ‘당연함’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헌법상 단체행동권 보장은 법률에 의해서만 구체적으로 보장될 뿐인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보장의 그물을 성기게 마련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유발한 갈등’이 ‘현대제철이 대화하지 않아 커진’ 상황임에도 노동자들의 행위가 불법행위라고 판단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4. 대화는 필요 없고 소송만이 필요한가

법리를 떠나 현대제철이 보여준 태도는 ‘염치가 없다’. 자신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정부의 판단과 법원의 판단이 있으나 무엇 하나 받아들일 수 없고, 노동자들이 대화를 위해 행한 행위들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는 것인가. 대화는 필요 없고, 소송만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런 식의 소송이 노동조합의 활동을 저해하도록 두어도 되는가.

5. 대화하게 하자

노동자들을 대리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사적 자치의 원칙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 강행규정이라는 사실에 끊임없이 불만을 표시하고 독자적인 사업장 내부의 질서를 일방적으로 세우기를 원한다. 동의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사적자치의 원칙은 민법의 근간이다. 당사자 사이의 합의는 언제나 중요하다.

그러나 대화가 없는 합의는 합의가 아니다. 대화는 필요 없고, 소송만이 필요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애초에 사적자치의 원칙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상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하자는 시도’ 일체를 불법행위라고 매도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는다. 칼을 휘두르고 있는 자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사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방이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고, 같은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 사용자들의 불법행위들를 근절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란봉투법은 필요하다. 그 법이 노동자와 사용자를 대화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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