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9. 29. 선고 2020가합602440 임금

1. 사건의 개요

원고들은 한국오라클(이하 ‘피고 회사’)에서 근무하거나 근무했던 컴퓨터 하드웨어 기술지원 분야 엔지니어들로, 소정근로시간은 9시부터 18시까지이다. 원고들은 주로 자택에서 대기하다가, 피고 회사가 고객사로부터 컴퓨터 하드웨어 등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아 수리 엔지니어로 지정되면, 피고 회사 전산망 및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 해당 엔지니어가 고객사를 방문해야 하는 시각과 작업에 소요되는 예상시간이 기록되고, 원고들은 전산망 및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한 일정에 따라 장비를 지참하고 해당 고객사에 방문해 장애를 해결하고 다시 자택으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다.

피고 회사는 고객사에 24시간, 장애신고시부터 2시간 내에 출동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있기에, 평소 원고들은 소정근로시간인 평일 9시부터 18시 외에도 스케줄이 지정돼 출동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장애신고에 대비하기 위해 순번을 돌아가며 당직근무로 지정되면 24시간 동안 출동을 위해 대기하기도 했다. 원고들은 기 지급받은 임금 외에, 평일 18시 이후 및 휴일에 스케줄이 지정돼 근무한 시간에 대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청구하고, 또한 출동을 위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던 당직근무시간에 대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청구했다.

2. 쟁점

이 사건에서 문제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평일 18시 이후 및 휴일에 스케줄이 지정돼 근무한 시간에 대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 지급돼야 하는지 여부다. 피고 회사는 원고들이 고객사에 직접 방문해 수리한 시간을 제외한 대기시간,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 피고 회사가 원고들에 대한 교육시간, 내부회의 참여시간, 기타 잡무시간 등은 근로시간에 해당하지 않고, 실제 수리에 소요되는 시간만을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로를 제공하지는 않았으므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둘째, 원고들이 예상치 못한 장애신고에 대비하기 위해 순번을 돌아가며 당직근무를 하며 24시간 동안 출동을 위해 대기한 시간에 대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 지급돼야 하는지 여부다. 피고 회사는 원고들이 주장하는 당직근무에 대해서는 그 업무의 내용과 질이 통상근로와 달리 대부분의 당직시간을 대기하면서 단속적 업무를 수행했을 뿐이므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청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셋째, 일부 원고들의 경우 소송 제기 이전에 퇴직하면서 ‘본인은 오라클과 본인의 고용관계 해지와 관련해 오라클 및 그 계열회사, 그 임원, 이사, 대리인, 직원, 법적 대표 또는 기타 오라클과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에 대해 그 사안 또는 형태를 불문하고 다른 청구가 없음을 진술하는 바이며, 오라클 및 그 계열사, 그 임원, 대리인, 직원, 법적 대표 또는 기타 오라클과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에 대해 민·형사, 행정 또는 사법상 어떠한 성격의 소송도 개시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퇴직합의서를 작성했는데, 피고는 이 원고들의 경우 부제소합의를 한 것이므로 소 자체가 부적법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 소멸시효와 관련된 쟁점이 있었는데, 노동법 쟁점과는 관련이 없어 판례리뷰에서는 따로 다루지 않는 것으로 한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1) 평일 18시 이후 및 휴일에 스케줄이 지정돼 근무한 시간에 대해서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의 지급의무를 인정, (2) 24시간 출동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는 순번제 당직근무에 대해서는 지급의무를 부정, (3) 일부 퇴직자에 대한 퇴직합의서는 유효한 부제소합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세한 설시는 다음과 같다.

가. 평일 18시 이후 및 휴일에 스케줄이 지정돼 근무한 시간에 대해 : 원고들은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 실제로 근무했다고 평가됨.

첫째, 평일 9시부터 18시까지 ‘자택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 전부가 피고의 실질적인 지휘·감독이 미치는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고객사가 피고 회사에 장애신고를 하면 피고 회사의 파견팀 담당자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해 팀 직원 중 1명을 엔지니어로 배정하는 점 △피고는 고객사에게 유사시 24시간 출동 및 장애 신고시 2시간 이내 방문 서비스를 약속하고 있는바, 엔지니어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산망 및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 고객사 방문시간, 소요 예상시간, 종료시간 등을 입력하도록 하고 있는 점 △피고 회사는 원고들의 작업건수, 배정 거절건수 및 수리 소요시간을 인사평가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배정거부시 또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방문한 경우 구체적인 소명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들은 소정근로시간인 평일 9시부터 파견팀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디에 위치한 고객사이든 2시간 이내에 방문을 마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택에서 ‘고객사로 이동하는 시간’ 역시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피고 회사는 2015년 이후부터 본사에 엔지니어들이 근무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있는데 원고들의 자택 역시 근무지에 해당한다. 원고들은 피고가 고객사에 약속한 장애 신고시 2시간 이내 방문 서비스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고객사에 신속해 이동해야 하므로 이동시간 역시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이 아니어서 근로시간에 해당한다.

셋째, 원고들은 그 외에도 컴퓨터 하드웨어 등 장애 해결을 위한 새로운 장치나 소프트웨어 등에 대한 교육을 이수하고, 피고가 주관한 회의에 참여하는 등 주된 업무인 시스템 유지보수 업무에 부수적인 업무를 이행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시간 역시 전부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

나. 24시간 출동 대기상태로 있어야 하는 당직근무에 대해 : 그 내용과 질에 있어 통상근로와 마찬가지로 평가될 만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지 않음.

이 사건의 경우 원고들이 한 당직근무의 내용과 질이 통상근로와 마찬가지로 평가될 만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보면 △원고들은 6주마다 순번을 정해 1주일 동안 소정근로시간 이외의 나머지 시간에 자택에서 대기하는 방식으로 당직근무 했는데, 출동 요청이 없는 경우 자택에서 수면이나 휴식을 취했던 점 △당직근무시 수행한 업무의 성격과 내용 및 형태 등을 고려하면, 당직근무 업무는 통상의 주간업무에 비해 근무의 밀도나 노동의 강도가 낮다고 보이는 점 △당직근무를 하는 동안은 고객사로부터 장애 접수를 받는 건수 및 그로 인해 긴급히 출동하는 빈도도 통상근로시간에 비해 훨씬 더 적었다고 보이는 점 △당직근무 특성상 근로시간과 휴게시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정확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고, 피고 회사 역시 원고들에게 별도의 당직수당을 지급한 점에 비춰 그러하다.

다. 퇴직합의서의 성질에 대해 : 부제소합의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고, 이 사건의 퇴직합의서는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에 대한 유효한 부제소 합의가 아님.

구체적으로 △이 사건 퇴직합의서는 원고들이 어떠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성격의 소송도 제기하지 않겠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특정된 법률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설령 이를 특정된 법률관계에 대한 부제소합의라고 보더라도, 퇴직합의서는 ‘고용관계 해지’와 관련한 법률상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작성된 것이므로 부제소합의 효력이 해고 내지 퇴직과 관련된 법률관계에 한정된다고 소극적으로 축소 해석함이 타당한 점을 고려하면,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 문제되는 이 사건에서 퇴직합의에 기한 부제소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이 사건의 경우 근로자들이 전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자택과 고객사만을 오가면서 근무했기 때문에 자택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자택과 고객사, 고객사와 고객사 사이 이동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 다수의 쟁점이 존재했다.

종래 법원은 대기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와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 각기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으로 버스기사의 대기시간과 관련해 버스운행을 마친 후 다음 운행 전까지 대기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본 대법원 판결이 있고, 하급심 판결 중에서 점각시간 도중 근로자들이 다른 개인용무를 보기도 한 사건에서 점각시간 내외 시간이 모두 근로시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사례도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근로자들의 근무형태가 다양해지고,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물리적으로 회사 내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근무하는 경우에 근로시간을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 관련된 분쟁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이 사건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근로자들이 100% 외근하면서 회사의 통제 밖에서 자유로이 시간을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규율이나 전자적 방식 등을 통해 원격 통제를 받고 있는 사례다. 회사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규율이나 전자적 방식을 통한 지휘·감독을 이용하는 경우가 다수 있고, 또한 이러한 통제는 형태만 달리하고 있을 뿐이지 사람이 직접 하는 지휘·감독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판결에서는 피고 회사가 원고 엔지니어들에게 가하는 통제의 실질적인 측면을 면밀히 살펴 소정근로시간 전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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