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연배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이사 
▲ 강연배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이사 

이재유는 누구인가? 오랜 기간 1930년대 노동운동을 연구해 온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1930년대 서울의 혁명운동>에서 이재유에 대해 “‘당대 최고의 혁명가’ 혹은 ‘1930년대 좌익운동의 신화’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거듭되는 체포와 고문, 감옥생활, 탈주, 지하활동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남미의 혁명가로 널리 알려진 체 게바라 못지않게 극적이고 혁명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한국 진보운동 역사에서 이재유는 1930년대 민족혁명의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재유는 1905년 함경남도 삼수군에서 출생했다. 1925년 개성 사립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했다가 퇴학처분을 당한 후 같은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에서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다시 체포돼 징역 3년6월을 받고 1932년 12월 출옥했다. 비합법 운동을 하면서 도쿄 경시청을 비롯한 경찰서에 무려 70여차례나 검속될 정도로 맹렬한 활동을 했다. 출옥 후에는 직접 노동자가 돼 공장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1933년 9월 노동현장을 기반으로 한 ‘경성 트로이카’를 결성해 활동하다 1934년 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됐으나 4월 감옥에서 탈주했다. 그의 수차례 탈옥과 변장술, 대범하고도 신출귀몰한 활동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1936년 6월 조선의 절대 독립, 일본 제국주의 타도 등을 목적으로 조선공산당 경성지방협의회를 조직해 활동하다 1936년 12월 일제 경찰에 체포돼 징역 6년형을 받고 1942년 9월 형기를 마쳤다. 그러나 일제는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출옥시키지 않았다. 이후 이재유는 고문 후유증이 심해진 상태에서 1944년 10월 청주보호교도소에서 사망한다. 당시 그의 나이 40세, 해방을 불과 10여개월 앞둔 시기였다.

그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고문, 학살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민족혁명을 실천했다. 또한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한 독특한 운동방식인 ‘트로이카’ 전술을 채택했다. 그의 영향 아래에서 이관술·박진홍·김삼룡·이현상 등 일제시기와 해방 이후 변혁운동을 주도했던 많은 운동가들이 배출됐다. 이재유 체포 소식이 만주에 알려진 직후 보천보 전투가 진행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와 함께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독립운동 활동을 높이 평가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이러한 이재유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기념사업회를 준비해 온 발기인들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항일·노동운동가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출범식을 진행한다.

기념사업회 준비위원에는 노동·시민사회를 비롯해 각계에서 230여명이 이름을 올렸다. 김금수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상임고문,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최승회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 이사장,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 김경일 명예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재유 선생과 함께 1930년대 ‘경성 트로이카’로 활동했던 이관술 선생의 후손 손옥희씨, 이효정 선생의 후손 박진수씨도 함께한다.

그동안 기념사업회를 추진해 온 발기인들은 취지문을 통해 “이재유 선생은 노동자의 투쟁을 중심으로 민족해방 투쟁을 이끌었으며, 혁명적이었던 만큼 민족적이었고, 민족적이었던 만큼 민중적이었다”며 “대중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진정한 민중의 세상’ 실마리를 찾기 위해 기념사업회를 준비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 출범은 세계노동운동사연구회가 오랜 기간 논의하고 준비해 온 사업이다. 연구회는 2013년부터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년 이재유 선생 추모식을 하고 있다. 조월희 작가가 만든 이재유 선생 석고상도 관리하고 있다. 김금수 상임고문은 기념사업회를 처음 제안했을 뿐만 아니라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다. 그가 2019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칼럼 ‘혁명가 이재유가 던지는 물음들’에서 “이재유가 원칙적이고도 창의적인 활동을 전개했던 일제시기의 상황과 오늘날의 우리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이재유는 우리들에게 교훈과 다름없는 무거운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기념사업회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출범식 이후에도 계속 준비위원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며 내년 상반기 중에 기념사업회를 정식 발족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유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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