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운병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2. 9. 29. 선고 2021구합3141 판결

Ⅰ. 사실관계

기업별 노조였던 한진교통노조합(이하 ‘기존 노조’)은 2020년 8월 조합원들의 결의를 거쳐 산별노조인 전국택시산업노조 한진교통분회로 조직형태를 변경했다. 원고 한진교통 주식회사는 ‘노동조합은 기업별 노동조합으로만 존속하며 상급단체 가입을 하지 않는다’고 정한 단체협약 1조2호를 근거로 조직형태 변경을 부정했다. 나아가 2005년께 노조 집행부를 대거 해고하는 방식으로 산별노조를 와해하는 데 성공했던 사측은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노조를 깨뜨리려 했다. 사측은 2020년 겨울 노조간부와 대의원들(이하 ‘참가인’)들을 대거 해고하거나 정직시켰다. 사측은 “기존 노조와 한진교통분회는 동일성이 없으므로 근로시간면제자의 지위도 유지될 수 없다”며 분회장·부분회장의 적법한 근로시간면제를 성실근무 불이행이라 했다. 그밖에도 사측은 참가인들이 무단결근·불성실근무를 했고, 운송수입금을 미납했다고 했다.

Ⅱ. 판결의 내용

1. 성실근무 불이행

법원은 기존 노조와 원고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이 사건 분회에 그대로 승계된다고 할 것이므로, 분회장·부분회장은 원고에 대한 관계에서 여전히 단체협약에 따른 근로시간면제자의 지위에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 기존 노조는 조합원 124명 중 121명의 찬성으로 조직형태 변경을 하기로 하는 결의를 했는 바, 그 결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6조1항8호, 2항이 규정하고 있는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서 유효하다.

② 단체협약 1조2항은 ‘조합은 단위노조(기업)조합으로서 여타의 상급단체 가입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형태의 변경에 관한 사항’을 노동조합 총회 의결 요건으로 규정한 노조법 16조1항8호 및 2항은 근로자로 하여금 노동조합의 설립이나 조직형태 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조직형태 변경을 결정한 결의가 단체협약 1조2항에 반하는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단체협약 1조2항은 노조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근로자의 노동조합의 설립 내지 노동조합 조직형태 선택의 자유 및 그에 관한 효력을 배제할 수 있다는 취지에 다름 아니어서 단체협약에 따른 협약자치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③ 기존 노조가 용인시청에 해산신고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한진교통분회가 기존 노조와의 동일성을 상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기존 노조가 동일성을 유지하며 한진교통분회로 조직형태를 변경함에 따라 더 이상 기존 노조의 형태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용인시청에 형식적으로 해산신고를 한 것으로 보일 뿐, 기존 노조와는 전혀 별개의 분회를 구성하려는 의사로 해산신고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

2. 운송수입금 미납

운송수입금을 미납한 행위는 징계사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징계양정에 있어 회사의 징계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참가인들이 고의로 원고에게 운송수입금을 미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참가인들이 고의로 원고에게 운송수입금을 미납했다면 업무상횡령죄의 죄책을 부담하게 될 것임에도, 경찰은 참가인들의 업무상횡령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참가인들의 운송수입금 미납 행위를 일반적인 택시기사의 운송수입금 미납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원고 소속 다른 택시기사들 상당수(137명)가 원고에게 운송수입금을 미납했던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② 징계처분이 참가인들과 동일하게 운송수입금을 미납한 원고 소속 택시기사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형평성 있게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원고는 오로지 참가인들에 대해서만 업무상횡령죄로 고소하고 이 사건 징계처분을 했다. 심지어 참가인들은 원고 소속 택시기사들 중 가장 많은 운송수입금을 미납한 사람도 아니었다.

③ 원고는 현재까지도 운송수입금을 미납한 다른 소속 택시기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처럼 원고가 유독 참가인들에 대해서만 이 사건 징계처분을 한 것은 참가인들이 이 사건 분회의 간부 및 대의원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Ⅲ. 검토 및 판결의 의의

1. 단체협약자치의 한계

단체협약은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거래·타협의 산물이다. 노동조합은 장기적 안목으로 협약을 체결하므로 경우에 따라 노동조합 또는 개별 근로자에게 불리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협약에도 한계가 있다. 단체협약은 헌법과 노동관계법의 규정에 반할 수 없다. 대법원도 ‘성별 작업구분이나 근로조건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아니한 채 남녀를 차별해 정년을 규정한 단체협약서 및 취업규칙의 조항은 근로기준법 5조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8조1항에 위배돼 무효’라며 단체협약자치에 한계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본 판결에서 법원은 ‘조합은 단위노조(기업)조합으로써 여타의 상급단체 가입을 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단체협약에 대해 ‘노조법 16조1항8호 및 2항의 적용을 배제하고 근로자의 노동조합 설립 내지 조직형태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단체협약에 따른 협약자치로 인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은 연대하는 만큼 성장하고, 사용자의 통제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산별노조가 되거나 상급단체에 가입하면 사용자는 예민하고 불안해진다. 원고는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단체협약을 이용했다. 원고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사업장이 산별노조로의 조직형태 변경, 상급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단체협약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체협약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단체협약을 악용해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정면으로 반하기 때문이다. 본 판결은 이를 명확히 말하고 있다.

2. 운송수입금 미납에 대한 판단

2017년 대법원은 2천400원을 손으로 받아서 사용한 운전자에 대한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운송수입금 중 일부를 횡령한 것은 그 액수의 다과를 불문하고 회사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저버리는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하급심인 서울행정법원도 400원씩 2차례 800원을 횡령한 사안에 대해 해고가 정당하다 판시했다(서울행정법원 2011. 12. 2. 선고 2011구합25876 판결). 운송수입금 미납에 대해 법원은 단호하고 엄격하다.

위와 같은 분위기 속에 운송회사들은 노조간부들을 표적감사하고 소액이더라도 운송수입금 미납이 발견되면 즉시 해고했다. 구체적 사정을 도외시했던 법원의 판결은 이러한 해고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반면 본 판결에서 법원은 비위행위 전후의 구체적 사정들을 두루 살펴 징계양정을 판단했다. 참가인들이 미납한 운송금 액수와 다른 근로자들의 운송금 미납 액수를 비교하고, 참가인들이 운송수입금 미납액을 변제하거나 급여에서 상계처리해 달라고 신청한 사후적 사정 등이 판단요소가 됐다. 또한 본 판결은 표면적인 징계사유를 걷어 내고 해고의 진정한 목적이 노동조합 탄압에 있다는 것을 밝혀 냈다.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동안 자신의 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해고되던 근로자들에게 본 판결은 작은 보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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