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봉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대상판결 : 대법원 2022. 9. 29. 선고 2018다301527 판결

1. 사건의 개요

(1) 원고들은 1960년 상반기 출생으로 피고에 입사해 30년 이상 근무하다가 2016년 상반기에 특별퇴직한 자들이고, 피고는 은행법에 의한 은행업무 등을 영위하는 법인이다.

(2) 피고는 2007년 하반기부터 만 55세에 도달한 직원이 임금피크제와 특별퇴직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내용의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왔다. 피고는 위 임금피크제 내용을 일부 변경하고자 2009년 1월19일자로 임금피크제 개선방안을 마련해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았다(이하 ‘이 사건 개선안’). 이 사건 개선안은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임금피크 연령을 만 55세에서 만 56세로 상향하고 그에 따른 총급여의 지급률을 조정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특별퇴직과 관련해서는 ‘피고는 만 56세가 도래한 직원들이 특별퇴직을 선택하는 경우 소정의 특별퇴직금 등을 지급하는 외에 계약직 별정직원으로 재채용해 최장 만 58세까지 계약을 갱신하고 월 200만원의 급여를 지급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이하 계약직 별정직원 재채용에 관한 부분을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라고 하고, 계약직 별정직원을 ‘별정직’이라 한다). 이 사건 개선안에는 위 별정직 재채용과 관련해 “별정직원(계약직)으로 재채용 기회 부여”라는 기재가 한 번 있으나, “별정직원(계약직) 재채용” 등 피고의 재채용의무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재가 다수 있다.

(3) 피고는 이 사건 개선안 도입 이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총 13번의 특별퇴직을 실시했는데, 특별퇴직을 신청한 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채용돼 만 58세까지 별정직으로 근무했다. 피고는 2016년 1월25일 2016년 상반기 중 만 56세가 도래하는 직원(1960년 상반기 출생)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와 특별퇴직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안내했다. 위 안내문에 재채용 예정일 등은 기재되지 않았고, “은행의 인력현황, 업무수요 등을 고려해 필요시 계약직 채용 기회 부여, 채용 인원, 업무, 시기, 근로조건 등은 채용결정시 별도 안내”라고만 기재돼 있었다. 원고들은 2016년 상반기에 만 56세가 도래했는데, 임금피크제와 특별퇴직 중 특별퇴직을 선택해 2016년 5월31일자로 퇴직했다. 그러나 피고는 원고들을 별정직으로 재채용하지 않았다.

(4) 이에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별정직 재채용 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원고들은 소송에서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이고, 그 의미는 특별퇴직자들에 대한 피고의 재채용의무를 부과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원고들이 패소했으나, 2심에서 원고들이 승소해 피고가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1) 취업규칙에서 정한 복무규율과 근로조건은 근로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 종료 후의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존속하는 근로관계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근로자의 대우에 관해 정한 사항이라면 이 역시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

가)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임금피크제의 대상이 된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기간 동안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특별퇴직을 선택하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부여되는 특별퇴직 조건 중의 하나이고, 그 내용은 특별퇴직 후 계약직 별정직원으로 재채용돼 근무기간 동안 정해진 임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피고와 원고 사이에 근로관계가 존속한 상태에서 특별퇴직을 신청한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이루는 것이고, 특별퇴직에 관한 근로자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나) 피고는 2007년 7월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거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2009년 1월 이 사건 개선안을 시행할 때에도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았다. 또한 피고는 그로부터 5년이 경과한 2014년 5월 이 사건 재채용 부분에 대한 추가 개선안을 마련한 다음 이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에 동의를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정은 피고 스스로도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 근로자 개인과 피고 사이의 개별적 권리·의무관계를 직접 규율하는 것이라고 인식했음을 보여주고,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 취업규칙의 성질을 가진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다) 피고가 반대 근거로 들고 있는 대법원 1992. 8. 14. 선고 92다1995 판결에서 채용에 관한 기준은 근로조건의 기준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위 판결은 신규채용에 관한 사안이므로 이미 피고와 근로관계가 있는 근로자의 특별퇴직 후 재채용이 문제되는 이 사건과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어서 이 사건에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2)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그 근로자의 복무규율이나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서 노사 간의 집단적인 법률관계를 규정하는 법규범의 성격을 가지는데, 이러한 취업규칙의 성격에 비춰 취업규칙은 원칙적으로 그 객관적인 의미에 따라 해석해야 하고, 문언의 객관적 의미를 벗어나는 해석은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 취업규칙의 해석원칙에 비춰 보면,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피고에게 원칙적으로 특별퇴직자를 재채용할 의무를 부과하는 취지로 해석된다.

(3)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특별퇴직조건 중의 하나로서 특별퇴직을 선택한 근로자에게 특별퇴직 후 계약직 별정직원으로 재채용돼 근무기간 동안 정해진 임금과 퇴직금 등을 지급받을 수 있는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채용 신청의 기회만을 부여할 경우 피고의 재량에 의해 위와 같은 지위가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특별퇴직조건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경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94조1항 단서에 따라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피고는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을 재채용 신청의 기회만 부여하는 내용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 나아가 피고가 주장하는 사정들만으로 위와 같은 변경이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될 만한 사회통념상의 합리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4) 원고들과 피고 사이에 재채용 신청의 기회 부여만을 특별퇴직조건으로 하는 것에 대해 확정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그와 같은 개별합의가 성립됐더라도 그러한 개별합의는 이 사건 재채용 부분에 반해 원고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합의로서 근로기준법 97조에 따라 무효다.

3. 대상판결의 의의

먼저, 대상판결은 퇴직 이후의 채용에 관한 것도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점을 최초로 설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대법원은 취업규칙이 정한 기준에 채용에 관한 기준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1992. 8. 14. 선고 92다1995 판결). 이 사건에서는 재채용이 퇴직 이후의 채용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근로조건의 해당 여부가 다툼이 됐다. 1심 법원은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채용에 관한 기준이므로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2심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건 재채용 부분도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2015년 하반기에 특별퇴직을 했던 자(1959년 하반기 출생)들도 이 사건과 동일한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해당 사건 1심 법원은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해당 사건 2심 법원은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 취업규칙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상판결은 “특별퇴직 이후의 재채용도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존속하는 근로관계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근로자의 대우에 관해 정한 사항이므로 취업규칙에서 정한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최초로 설시한 것이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위 92다1995 판결은 신규채용에 관한 사안이므로, 이미 피고와 근로관계가 있는 근로자의 특별퇴직 후 재채용이 문제되는 이 사건에 원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상판결은 이 사건과 같이 임금피크제도의 선택사항으로 특별퇴직을 시행하거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면서 재채용의 조건을 부여하는 경우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대상판결은 취업규칙의 해석에 관한 상식적인 태도를 견지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사건 개선안에는 “재채용 기회부여”라는 기재가 한 번 있으나, ‘재채용 의무’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재가 다수 존재한다. 피고가 작성한 그 밖의 문서들에도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 피고의 재채용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재가 다수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원고들 이전에 실시된 총 13번의 특별퇴직에서 피고는 거의 예외 없이 특별퇴직자들을 재채용했다. 이와 같은 제반 사정을 고려해보면,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이 피고의 재채용의무를 부과하는 취지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1심 법원은 재채용의무로 해석될 수 있는 다른 사정들은 배제한 채, 이 사건 개선안의 “재채용 기회 부여”라는 문구 하나만을 근거로 피고의 재채용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 법원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 사건 재채용 부분은 피고의 재채용의무를 부과하는 취지다”라고 판단했고, 대상판결이 원심 판단의 정당성을 확인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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