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최근 ‘민간주도의 사회서비스 확대, 복지체계 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사회서비스를 사실상 민영화하겠다는 것으로, 그간의 공공성 강화 움직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을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돌봄노동자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싣는다.<편집자>

제갈현숙 한신대 강사
제갈현숙 한신대 강사

인간은 출생 후, 죽기 전, 병들어서 아플 때, 장애가 발생했을 때와 같이 불가피하게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이러한 의존성에 대해 철학자 키테이(Kittay)는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것이 아닌, ‘인간 의존의 사실(fact of human dependency)’로서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요소로 봤다. 의존이 필요한 시기에 누군가의 돌봄을 받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존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명제가 참인 것처럼, 인간의 의존성도 인간 존재에 내재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인간 의존의 사실’은 의존을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 보편적인 것, 정상적인 것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존’은 현재까지도 ‘사실’로서가 아닌 부정적인 의미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의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돌봄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평가절하해 왔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자유주의는 사회를 ‘자유롭고 평등하며 비의존적이고 생산적인 개인들의 결사체’로 상정해 왔다. 인간 존재는 태생부터 돌봄을 전제할 수밖에 없지만, 자유주의 사회에서 누군가로부터 제공된 돌봄 사실은 그 자체를 망각하도록 사회화됐다. 더불어 비의존적으로 생산적인 개인만이 능력을 갖춘 바람직한 인간으로 권유되고 평가됐다. 그러나 비의존적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돌봄이 은폐되거나 평가절하된 사회에서 돌봄은 누군가의 사랑이란 이름의 희생으로 제공되거나,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재생산됐다. 전자의 경우 모성애라는 신화에 기대어 무급형태의 돌봄노동으로, 후자는 유급형태이지만 계급적·인종적·젠더적 측면에서 주로 하층 유색인종의 여성이 담당해 왔다.

돌봄에 대한 정의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수고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돌봄노동에 대한 정의는 아직 통일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사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이 강한 성격의 노동으로 가정·시장·지역공동체·국가 안에서 휴먼서비스 제공을 위한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양육·보육·간병·사회(복지)서비스·교육 등을 포함하고, 대면적인 특성을 띠며, 의존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가정과 사회에서의 돌봄 관련 무급·유급 활동과 체계를 총칭한다.

국가는 돌봄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개인과 가족 단위에 전가해 오다가 저출생·고령화 심화에 따른 인구문제, 가족 해체, 변화에 따른 재생산 문제에 직면하면서 돌봄의 사회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노동에 대한 가족 내, 즉 비공식 영역에서 가족 밖인 공식 영역으로 책임을 옮기되, 시장이 맡는 방식이 아니라 공적이고 비영리적이며 비상품적 속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돌봄노동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일반 상품의 속성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돌봄의 가치지향적 특성으로, 돌봄노동의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로 평가되기 어렵다. 즉 가정에서 제공해 왔던 돌봄을 돌봄노동자가 수행할 경우, 어느 정도로 보상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현재와 같은 비용 최소화 구조에서 돌봄의 필요와 만족감은 충족되기 어렵다. 돌봄노동에 대한 존중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돌봄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여전히 묵인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현 단계 돌봄의 사회화는 비공식 가정에서 착취해 왔던 돌봄노동을 국가에 의해 형성된 저임금 노동시장을 통해 공식적으로 착취한다는 점에서 착취의 대상이 전환됐을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사회는 돌봄 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위해 사회서비스의 고도화를 천명했다. 국가는 입으로는 인구와 재생산을 사회문제로 떠벌리고 있지만, 2006년 이후로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 돌봄의 시장화 전략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돌봄과 돌봄노동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성찰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점점 더 장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은 경제성장이 아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거대한 전환이 절실하다. 그 전환을 위한 중심에 돌봄의 가치와 돌봄노동에 대한 존중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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