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응하다가 2017년 3월21일 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서명식 코엑스노조 위원장(가운데)이 생전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는 모습. <아름다운 노동자 서명식 추모사업회>
▲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응하다가 2017년 3월21일 심근경색으로 숨진 고 서명식 코엑스노조 위원장(가운데)이 생전 기자회견을 하며 발언하는 모습. <아름다운 노동자 서명식 추모사업회>

노조위원장이 회사의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재차 확인했다. 항소심은 근무시간 예측이 불가능한 노조위원장의 업무 특성을 고려해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존재했다고 명시했다.

구조조정 대응에 ‘탄핵 연판장’까지
1년 넘게 불면증·스트레스 시달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6-2부(재판장 위광하 부장판사)는 고 서명식(사망 당시 44세) 코엑스노조 위원장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서 위원장이 목숨을 잃은 지 5년7개월 만이다.

서 위원장은 2016년 10월 노조활동을 하며 코엑스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을 중재하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측의 일방적인 명예퇴직 신청과 성과급제 개편을 막기 위해 교섭에 나섰지만, 진전이 없자 교섭권을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에 위임했다.

이후 사측과의 관계는 더 악화했다. 노조가 ‘노사교섭의 상급단체 위임’ ‘부당노동행위 및 노조탄압 촉구’ 등의 내용이 담긴 공문을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자 회사 팀장 14명은 서 위원장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냈다. 나아가 본부장과 팀장은 서 위원장을 탄핵하기 위한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서 위원장은 ‘탄핵 연판장 서명 강요’는 부당노동행위라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고 이후 연판장이 더는 회람되지 않았다. 교섭은 2017년 3월 재개됐지만 결렬됐다. 사측은 노조 사무실 이전 문제로 다시 압박했다. 임대차계약 종료를 이유로 노조 사무실을 축소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서 위원장은 불면증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결국 2017년 3월18일 흉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돼 3일 만에 심근경색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숨졌다. 서 위원장의 아내는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지만, 부지급 결정이 내려졌다.

2심 “업무부담 가중요인 충분” 추가 판단

그러나 1심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 질환이 악화해 심근경색으로 숨졌다고 판단했다. 서 위원장은 ‘비후성 심근병증’을 앓고 있었지만, 재판부는 “망인이 구조조정 개시 이후 처한 상황과 사망 1개월 전 제기된 비판 여론 등을 보면 사망 무렵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판시했다.

서 위원장이 노조전임자이자 근로시간면제자라 출퇴근 기록이 없었던 점은 노조 사무차장의 증언으로 보충됐다. 사무차장은 “서 위원장은 보통 제가 출근하기 전에 이미 와 있었고, 퇴근도 항상 제가 먼저 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재판부는 교섭 과정에서 맡았던 업무가 정신적 긴장을 요구했다고 봤다. 사측이 연판장을 돌리는 상황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통상 업무보다 컸을 것이라고 봤다.

공단은 1심에 불복해 항소를 이어 갔다. 서 위원장의 업무시간이 뇌심혈관질환 산재 인정과 관련한 노동부 고시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항소심은 서 위원장의 업무가 노동부 고시에서 정한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무 △휴일이 부족한 업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충분했다는 취지다.

공공운수노조는 항소심 판결을 즉각 환영했다. 최근 성명에서 “상처가 아물려고 하면 헤집는 근로복지공단과의 소송에서 견뎌 낸 유족에게 진정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공단은 상고를 포기하고 유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깊이 헤아려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을 대리한 조연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항소심은 객관적인 근로시간 자료가 남을 수 없는 노조전임자 업무의 본질상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인정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며 “공단은 기존 질환을 토대로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는데, 앞으로 이러한 주장은 법원에서 더 엄격하게 판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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