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액정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희귀금속 ‘인듐’에 중독되는 직업병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국제암연구소는 인듐을 발암추정물질로 분류하고, 우리나라도 2019년부터 유해물질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환경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건강정책포럼 회원을 포함한 전문가들이 인듐 직업병 예방 문제점과 개선과제를 제시한다.<편집자>

▲ 김현주 노동건강정책포럼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
▲ 김현주 노동건강정책포럼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어느 날 인듐-주석산화물 타깃 생산업체에서 퇴사한 노동자들이 이대목동병원에 왔다. 인듐-주석산화물이란 디스플레이를 만들 때 투명 전극으로 사용되는 소재다. 심각한 폐 손상과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건강영향에 대한 정보는 아직까지 충분하지 않다. 인듐 노출 노동자에서 폐질환 발생이 보고된 일본에서는 그 건강진단 결과를 30년간 보관해 추적관리하고 있다. 한국도 ‘간질성 폐질환’ 산재인정 사례가 있고, 얼마 전부터 인듐에 대해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특수건강진단 결과에 따라 필요한 사후조치 역시 사업주의 의무로 법으로 정하고 있다. 병원을 찾은 노동자들은 혈액 속 인듐수치가 높아서 여러 번 추적검사를 했으나 여전히 높은 상태에서 퇴사했다.

우리 병원에서 다시 검사한 결과 퇴사한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노출기준보다 높은 수치의 인듐이 혈액 속에서 검출됐다. 사실 작업환경이 열악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영세사업장도 아닌데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작업을 중단한 이후에 측정한 혈액 속 인듐 수치가 여전히 높은 것을 보니 믿어졌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직업병 예방이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보건교육, 작업환경측정과 관리, 특수건강진단과 사후조치 등 직업병 예방제도는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당사자 진술에 따르면 인듐의 유해성에 대한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환기시설은 2021년에야 일부 설치됐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작업자들은 면마스크만 쓰고 일했다 한다. 작업환경측정을 하러 전문기관에서 방문하거나 정부(산하)기관에서 점검 나왔을 때는 “청소를 깔끔히 해 놓으라”는 말을 들었다. 대청소를 할 때 제일 먼저 치우라 한 것은, 사용하고 남은 인듐을 재사용 목적으로 주전자에 넣고 끓일 때 썼던 주전자와 인덕션이었다. 법적인 문제가 된다고 들었다 한다. 외부 전문가들은 작업장을 조용히 한 바퀴 돌고 가곤 했는데, 노동자들에게는 한마디도 물은 적이 없었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듐의 유해성을 알려 준 사람은 특수건강진단 의사였다. 지속적으로 혈액 속 인듐수치가 높은 상태에서 수년간 작업한 사람들에게 고해상도 흉부컴퓨터단층촬영 검사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사업주는 그 정밀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특수건강진단을 담당한 기관에는 그런 정밀검사를 할 수 있는 의료장비가 없었다. 이에 대해 특수건강진단에 관한 규정은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직업병을 예방하는 의사로 이십여년을 살면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직업병 예방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수없이 있었지만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직업병을 앓아도 직업병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보고도 되지 않고, 보고되지 않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직업병은 사고로 인한 부상처럼 눈으로 확연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직업병 생존자는 남은 인생을 긴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직업병은 사실상 치료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예방이 중요하다. 직업병 예방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점은 언젠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개선해야 한다.

특히 인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산업에서 사용되는 물질이다. 첨단전자산업은 원청뿐 아니라 사내·외 하청업체, 장비와 부품업체 들이 연결돼 있는 커다란 생태계다. 이 안에서 위험도 흐르고 있다. 처음 직업병 위험을 부인했던 삼성전자는 고 황유미의 유족이 문제제기를 한 후 11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사과했다. 이제는 삼성·엘지·SK 하이닉스 반도체 3사가 건강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자체적으로 지원보상까지 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유해 작업에 무방비 상태로 일했던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걸렸던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인듐 노출자들에서 직업병 사례가 더 많이 보고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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