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훈 공인노무사(직장갑질119 교육센터장)

“좋아했는데 거부당해 살해했다.” 모 시의원의 발언이다. 신당역 역직원 살인사건을 빗나간 애정 표현, 개인 간의 문제로 치부한 것이 문제가 됐다. 신당역 사건은 직장내 괴롭힘 중 하나인 성폭력 괴롭힘 사건이면서 노동자 학대 사건이다. 명백하게 동료에 의해 저질러진 직장내 괴롭힘이며 3년간 이어진 ‘만남 강요와 협박’(일명 스토킹) 행위는 동료에 의해 저질러진 노동자 학대(worker abuse) 행위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일터 괴롭힘에 관한 협약에서 ‘일터 괴롭힘을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와 학대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런 사건을 일터 내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 노동자 학대(worker abuse) 사건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사업주의 책임에 주목한다.

고인의 사망 장소와 피의자와의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피의자는 고인의 거주지 접근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역직원이었던 피의자에게 신당역은 범행을 기획하는 데 최적의 장소가 됐다. 직위해제된 상태에서도 변경된 근무지를 알아내는 것은 너무도 손쉬웠고 CCTV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은 완전범죄를 위한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조사가 필요하다. 왜 회사는 몰랐을까, 물어야 한다. 3년간 스토킹 즉 동료에 의한 노동자 학대 행위를 회사에서 완전히 모를 수 있었는지 조사해야 한다. 피해자의 신고에만 의존한 소극적 조치가 아니라 적극적 보호 의무를 시행했어야만 했다. 더구나 경찰이 서울교통공사에 범죄 입건 사실을 통보하고 서울교통공사가 피의자를 직위해제 처분 할 때 어떤 혐의였는지 묻거나 혹은 탐문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고인이 수개월 전 신당역으로 발령 날 때 회사가 이 사건의 진상을 여전히 몰랐는지도 궁금하다. 모든 의혹은 투명하게 해소돼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책임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 살릴 수 있었다. 고인이 자신의 고통을 좀 더 쉽게 빨리 알릴 수 있는 시스템, 혹은 성폭력 위험을 미리 발견하고 식별하는 관리 시스템이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수개월 전 인사 배치에서 신당역이 아니라 보안이 잘 갖춰진 다른 안전한 곳으로 발령이 났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피의자가 고인이 어디서 근무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면 불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징역형이 구형된 피의자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본다고 느꼈다면 고인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매 단계마다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한 권리”를 염두에 두었다면 고인은 살아있을지 모른다.

2018년 뉴질랜드는 스토킹 등 폭력 범죄에 대해 기업의 적극적 보호를 노동법에 규정했다. 노조와 사업주가 체결한 단체협약이 공론화돼 법제화된 것이다. 가정폭력 스토킹 범죄를 당할 경우 누구에게나 10일의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특히 동료 간 젠더 기반 괴롭힘에 대한 회사의 적극적 보호를 의무화했다. 호주도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한국에도 이러한 단체협약 혹은 법이 있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다.

한국의 노조와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있었다면 살릴 수 있었다. 안전한 사회는 스토킹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전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직장내 괴롭힘 살인이라면 중대재해가 분명하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조사가 불가피하다. 이 사건은 직장내 동료 간 젠더 기반 범죄에 대해 회사의 적극적 보호 의무를 규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지금도 지하철역 직원을 노리는 범죄는 가능하다. 언론보도를 보면 치명적 공격으로 사망했다.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터 괴롭힘 예방 의무와 안전한 근무환경 제공의무는 회사에 있다. 노동자는 출근하면 안전하고 존엄하게 일할 권리가 있고 사장은 안전한 근무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권리는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고 의무는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노력했다면 고인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미안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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