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해고와 전보발령에 항의하기 위해 홈플러스 매장에 들어가 피켓시위를 한 노조 조합원들이 대법원에서 혐의를 벗었다. 마트는 영업시간 중에는 개방돼 있는 장소로서 피켓시위가 주거침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업무방해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조합원 7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조합원 7명, 해고·전보 항의 시위
1·2심 벌금형 집행유예, 대법원 “무죄”

노조 홈플러스지부 조합원 7명은 2020년 5월28일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에 대표이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해고와 전보 인사발령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간 이들은 ‘부당해고’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어 약 30분간 “직원들이 아파한다. 부당해고 그만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검찰은 조합원들이 점장의 의사에 반해 매장에 들어가 건조물에 침입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또 이들이 임직원들을 따라다니며 위력으로 현장점검 업무를 방해했다고 봤다. 일부 조합원들이 카메라로 촬영한 부분도 위력행사라고 판단해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1·2심은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매장에 들어가 건조물의 사실상의 평온을 해쳤다”며 조합원 3명에게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나머지 4명은 선고유예됐다.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홈플러스 매장은 영업시간 중에는 출입자격 등의 제한 없이 일반적으로 개방돼 있는 장소”라며 “피고인들이 매장 입구를 통과해 들어가면서 보안요원 등에게 제지를 받거나 보안요원이 자리를 비운 때를 노려 몰래 들어가는 등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를 근거로 매장의 평온을 해치는 행위로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며 건조물침입죄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관리자의 명시적 출입 금지 의사는 확인되지 않고, 설령 피고인들이 매장에 들어간 행위가 관리자의 추정적 의사에 반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행위 태양으로 출입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업무방해 혐의도 ‘무죄’ 판단
“점장 업무 중단 의도 아니다”

‘업무방해 혐의’도 무죄로 판단이 바뀌었다. 하급심은 피켓 시위 과정에서 고성을 지르고 카메라로 촬영한 것이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대법원은 ‘위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봤다.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되기 충분했는지는 피해자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피고인들의 행위와 성별, 나이를 비롯해 피해자의 인원과 지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은 피해자(점장)와 약 1~2미터 이상 거리를 둔 채 피켓을 들고 서 있다가 따라다녔을 뿐 가까이 다가가거나 피해자의 업무를 물리적인 방법으로 막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고성도 임직원의 현장점검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다.

다른 홈플러스 매장에서도 대표이사의 현장점검 일정에 맞춰 조합원들이 비슷한 시위를 했지만 별다른 고소 등 조치가 없었다는 점도 무죄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은 인사 재량권을 가진 대표이사를 직접 만나는 기회에 해고와 전보 등에 대해 항의하려고 한 것이지 점장인 피해자의 관리업무를 막거나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조합원들을 변호한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이번 판결로 실내의 노조활동이 사용자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주거침입죄로 인정되던 경우도 이제는 실제 사업장 내 평온한 상태가 저해됐는지에 따라 주거침입죄 성립 여부가 달리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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