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선 가톨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장)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피해자는 연간 10만명이 넘는다. 이 중 산재 사망자는 2천명이 넘고, 산재 장애인은 3만7천명이 넘는다. 매일 5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매일 100명이 산재로 인한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산재로 인한 장애인은 2016년 3만2천914명이었으나, 2020년 3만7천426명으로 크게 증가해 심각성이 더해 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장애인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에 새롭게 등록한 장애인이 8만3천명이었으니 산재 장애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복지부 통계와 산업재해 통계가 시점이나 기준에서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산재로 장애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라고 하면 흔히 선천성으로 발생한 장애를 떠올린다. 하지만 복지부가 조사한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 가운데 88.1%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10명 중 9명이 후천적 장애인데, 원인은 질병이 56%이고, 사고가 32.1%로 누구든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 정책은 사고사망자 감소에 집중돼 있었다. 이로 인해 산재 장애인 발생을 예방하고 개선 대책을 도모하는 정책은 매우 부족했다. 사망자 감소정책이 결국 산재 장애인 예방대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망자 감소에만 초점을 맞춘 협소한 정책보다는 일반 재해까지 감소시킬 수 있는 폭넓은 정책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재해를 유발할 수 있는 작은 요인부터 개선할 수 있도록 산재 장애인 예방대책을 수립한다면 사망자 예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책개발을 모색해야 한다. 하인리히의 1:29:300의 법칙을 적용하더라도 29건의 중대한 재해를 예방하면 1건의 사망재해를 예방할 수 있으므로 작은 재해까지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함으로써 사망재해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인리히 법칙의 비율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미한 재해가 중대한 재해를 일으키고, 중대한 재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때 사망과 같은 치명적인 재해가 발생한다는 원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책은 경미한 재해를 말 그대로 너무 가볍게 여겨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장애가 발생할 정도의 중대한 재해도 사망자 감소 대책에 밀려 정부 정책의 어젠다로 논의되지 못했다. 특히 산재 장애인 현황조차 알 수 없고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올바른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렵다. 산재예방 대책의 첫걸음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장애가 발생한 원인과 현황, 장애의 수준이나 정도 등을 정확히 확인해 개선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산재 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원인은 정부 조직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산재예방은 안전보건공단에서, 산재보상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추진하고 있어 업무 연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산재 장애인이 처한 안타까운 사례를 느끼고 공감하게 되면 사고예방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텐데 안전보건공단에서 제공하는 산재 사례는 사고 발생 경위에 집중돼 있을 뿐 사고 발생 이후 산재 장애인이 겪는 신체적·정신적·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은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 누구도 언제든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사고예방에 앞장서게 되고, 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인 개선을 정부와 사업주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하게 되고, 산재예방 문화 조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인데 예방과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산재 장애인의 고통은 당사자의 고통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생을 힘들고 불편하게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안타까움은 스트레스·우울 등을 유발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한다. 하지만 산재 장애인의 가족은 재난가족을 지원하는 건강가정기본법의 범주에 포함돼 있지 않아 사회적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로 존재하고 있다.

산재와 장애의 문제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가족·직장·지역 사회·국가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실질적인 정책추진과 예산지원 및 시설개선 등이 이뤄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