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또 사망사고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1일 오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근무 중에 작업대 사이에 한쪽 다리가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병원 치료 중 5일 사망했다. 3월 하청업체 노동자가 작업 중 목숨을 잃은 사고에 이어 대우조선해양에서 올해 두 번째 사망사고다.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서 조선소 4곳에서만 올해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금속노조는 조선업 전체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했다. 노조는 “조선소에서 일어나는 사망사고 70%는 하청노동자 사고”라며 “산재를 하청에 떠넘기는 식의 다단계 하도급과 위험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과 같은 소식을 포털 뉴스 검색에서 찾아 읽고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난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까지 입법해서 사망사고 등 산업현장에서 발생해 온 중대재해를 방지하겠다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그 법 시행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등 뭔가 대단하게 이 나라 산업현장이 중대재해 위험 환경에서 벗어난 듯이 야단이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업을 비롯한 우리의 산업현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를 포함해 중대재해 발생이 여전히 빈번하고, 산재 위험업무가 사내하청 노동으로 외주화하는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2. 조선업 등의 구인난이 해소되지 않자 정부는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입국할 수 있는 신규 외국인 노동자를 1만명 확충하기로 했다. 지난달 31일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34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2022년 외국인력 쿼터 확대 방안’을 의결했다. 올해 E-9 비자를 받을 수 있는 인원은 6만9천명으로 늘린 것인데, 이번 조치를 통해 입국하는 1만명 중 90%는 제조업(6천800명)·농축산업(1천230명)·어업(610명)·건설업(360명) 등에 배분된다. 제조업 인력 중 대부분이 조선업에 배정된다. 언론에 따르면 이번 조치에 따라 내년 1분기에는 외국인력 규모가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윤석열 정부는 기대한다고 밝혔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최근 입국 여건이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외국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번에 결정한 사항을 신속히 집행해 산업현장에서 인력 부족이 재연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고용허가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규모 수주실적을 달성했다며 기세를 올리던 국내 조선사들이 최근 들어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수년 전부터 계속된 조선업 경기 침체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많은 인력이 감축됐던 터라,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서 인력을 확충해 보겠다고 이같이 하는 것이겠다.

3. 사업장에서 인력이 부족하면 채용하면 된다. 채용모집 공고를 냈는데도 채용할 수가 없다면 채용 조건을 높이면 된다. 이것이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시장의 기본질서이자 근본원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이 나라에서 조선업을 비롯한 제조업 현장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인력이 부족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를 모집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해 활동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업이 호황일 때에는 수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근무했고, 불황일 때에는 그들이 빠져나갔다. 직접고용은 배제하고서 이 같은 방식으로 조선사들에서 인력 운용을 해 오고 있다. 수십년째 해 오던 것이라 변화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25일 노동부는 상시근로자 300명 이상 기업 3천687곳의 올해 3월31일 기준 고용형태 공시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기업이 공시한 전체 노동자 523만4천명 중 82.1%(429만9천명)는 공시 기업 소속이고, 17.9%(93만5천명)는 사업장 내 파견·용역, 하도급 등의 형태로 일하는 ‘소속 외’로 나타났다. ‘소속 외’ 노동자 비중은 1년 전에 비해 0.5%포인트(17.4%→17.9%)로 높아졌다. 사내하청 노동자 등의 비중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서 보면, 조선업의 경우에는 ‘소속 외’ 노동자 비율이 무려 62.3%로 나타났다. 조선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비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나라 조선산업은 사내하청 노동을 중심으로 인력 운용이 이뤄지고 있음을 정부조사 결과로 나타난 것인데, 그렇다면 대책도 이러한 조사결과를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사내하청 노동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노동현장을 개선하는 것이어야 한다.

4. 7월 말 윤석열 정부의 경찰력 투입 위협 속에 타결한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최근 구인난이나 조선업 하청 노조 파업 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며 "정부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과 조선업 이중구조 개선대책 마련 등을 시작으로 이 같은 노동시장을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원청과 하청업체 노동자들 간 임금 등 근로조건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청업체 노동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원청업체 노동자와 같은 일을 일해도 훨씬 적은 임금 등 처우를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이 직접고용과 정규직 전환을 주장할 때면, 사용자 자본과 권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말해 왔다. 직접 고용·정규직 전환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원청 정규직과의 임금 등 처우의 격차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말하는 자들은 마치 사내하청·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공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임금 등 직영 정규직과의 처우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중구조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얼핏 들으면 사내하청·비정규직의 처우를 원청 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수준으로 높여준다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일부 학자들만이 아니라 경총을 포함한 사용자단체와 이를 편드는 권력도 이구동성으로 하고 있다.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사내하청·비정규직의 처우를 직영 정규직의 수준으로 높여 준다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이 임금 등 처우 수준이 높기 때문에 사내하청·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 줄 수가 없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없애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한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이란 정규직의 임금 등 처우 수준을 낮추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정식 장관이 말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혁하겠다는 것도 이를 두고서 한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사용자·자본이 환영할 만한 ‘노동시장 개혁’인 것이다.

5.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아니다. 사내하청·비정규직의 임금·고용 등 처우가 문제다. 원청 정규직으로서 임금·고용 등 처우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은 아무리 개선해도 사내하청 노동일 뿐, 원청 정규직의 고용 수준이 보장될 수는 없다. 원청 정규직의 처우를 삭감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으로는 오늘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가 없다.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우선하는 자본의 논리에 편승한 개혁은 아무리 포장을 해도 결코 노동개혁일 수가 없다. 문제는 사내하청 노동 자체다. 원청의 사업을 위한 인력으로 사내하청 노동을 사용하고 있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아무리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파견근로가 아니라고 변명해도 이 같은 실체는 부정할 수는 없다. 아직까지 법원에서 파견근로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실체까지 감출 수는 없다. 컨베이어 자동생산 흐름 등과는 다른 작업장 특성 때문에 주장·입증이 어렵기 때문이지 실질적으로 원청이 지시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중구조 해소가 아니라, 이러한 실체를 명확히 인정하고서 사내하청 노동을 해소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사내하청 노동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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