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얼마 전, 스스로 만든 철제감옥 안에 자신을 가두고 투쟁했던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 노동자 5명에게 대우조선해양에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력 15년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가 연 3천4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데, 이런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천300년을 갚아야 가능한 사상 최대의 손해배상 청구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잠깐만 생각해 봐도 대우조선이 하청노동자들에게서 정말 이런 손해배상을 받으려고 하는 소송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하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다음에도 지옥으로 몰아갈 수 있으니 다시는 이런 도전을 꿈도 꾸지 마라는 협박인 것이다.

하루 12시간 이상 주 5일을 꼬박 일해야 최저임금보다 약간 많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하이트진로 화물차 특수고용 노동자들 26명에게도 하이트진로가 5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릴레이에 놀라, 실로 오랜만에 국회에서 쟁의행위 참가자에 대한 민사 책임을 제한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8월 말 현재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이수진·임종성·강민정·양경숙 의원 및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이 제출됐다.

그런데 발의된 법안들을 살펴보니 과연 제2의 대우조선해양·하이트진로 손해배상 청구 사건을 방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현재 발의된 법안들은 대체로 “사용자는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 밖의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대우조선해양과 하이트진로는 자신들이 쟁의행위를 한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 선박 건조업무의 70%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대우조선해양의 SA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를 통해 작업구역, 작업량과 속도, 업무배치 등 작업 전반에 대한 통제를 받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휴일·휴가·특근 일정도 원청의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고, 임금 수준은 원청이 지급하는 하도급 대금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마저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 대금 삭감 등 계약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사내하청 업체들은 사실상 인력공급업체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할 정도다.

실태가 이러한데도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9년간 30% 삭감된 임금 회복을 요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들은 ‘제3자’라고 주장하면서, ‘제3자’인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쟁의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역대 최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이트진로에 전속돼 일한 화물차 노동자들의 운송구역을 정하는 자도, 배송량에 따른 운송료를 산정하고 지급하는 자도 하이트진로다. 지난 15년간 하이트진로의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서도 차별적인 운임을 일방적으로 강제해 온 자도 하이트진로다. 그런데도 정부가 앞장서서 화물차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하이트진로 운송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몰아갔고, 하이트진로는 자신들은 노조법의 ‘사용자’가 아니라며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하이트진로처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원청’을 노조법의 ‘사용자’로 보지 않는다면, 이들이 ‘제3자’라며 비정규 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십수 년을 매일같이 피땀 흘려 일해 온 사업장에서 하루아침에 ‘제3자’라고 등 떠밀리는 특수고용, 하청·용역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상대로 노조활동하고 단체교섭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노란봉투법’은 반인권적 손해배상 책임이라는 자본의 저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자를 노조법의 ‘사용자’로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이 계속돼야 하고, 노동자들이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도 노동 3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조법 2조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