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2022년 5월, 우리 대법원은 판결(2017다292343)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임금피크제로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라면 그 조치를 무효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는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많은 소송에 영향을 끼칠 만한 주요 판결로 화제가 됐고, 법률원에 자신이 재직 중인 사업장의 임금피크제도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 상담을 요청하는 전화도 많아졌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의 정도’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것일까? 임금이 20% 삭감되면 불이익이 과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30% 삭감되면 불이익이 과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자마자 직전 해에 지급받던 ‘피크 임금’에 비해 50%나 임금이 삭감되는 회사도 있다. 이 회사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에 이르기 전 마지막 해의 임금이 ‘피크 임금’에 비해 70% 삭감되도록 설계돼 있어, 최종 5년간 일하면서 지급받는 임금의 지급률은 190%(피크임금 정상 지급시 500%)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이런 임금피크제가 있을 수 있나?

신용정보회사인 A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A사는 2014년께 증대되는 인건비 부담에 비해 회사가 처한 경영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이유로 각종 복리후생을 중단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실제와 동떨어진, 지나치게 비관적인 예측에 근거해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부담시킨 것이었다. 복리후생을 축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위기가 극심한 상황’이라면서 회사는 2013년 하반기에는 임원들의 기본연봉을 최대 19.8%까지 인상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의의사를 취합하는 날에는, A사 임원들이 퇴임 임원 전체를 초대해 골프행사를 개최하고 고급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과연 ‘위기가 극심한 상황’이라던 A사의 판단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3년과 2014년 무렵 A사의 경영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이후에도 A사는 애초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준수한 매출성적을 보이고 있다.

A사는 이와 같이 과도한 임금 삭감을 동반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이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에게 희망퇴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희망퇴직제도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이 희망퇴직하는 경우 임금피크기간 동안 지급할 임금(190%) 전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같은 금액을 일시에 받을 수 있다면, 누가 5년 동안이나 계속근로하는 것을 원하겠는가? 실제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이래 지난해까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전원이 자진 퇴사했다. A사는 낮은 지급률의 임금피크제를 운영하고 희망퇴직제도로 사실상 자진퇴사를 유도한 것인데,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이 도입한 ‘60세 정년연장’ 제도가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다.

당시 A사는 이후 경영상황이 개선되면 각종 인사제도 개악을 원상회복할 것처럼 설명했으나, 2014년 이후 경영상황이 개선됐어도 실제로 그러한 조치는 시행된 적이 없다. 이에 A사의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이 지난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임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면서 법정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다수 언론에서 A사가 운영하고 있는 임금피크제 실태에 주목하고 이를 보도했다. 그만큼 A사의 임금피크제가 비상식적이고,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제도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들이 제기한 임금 청구의 소는 올해 11월에 비로소 첫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현재까지 나타난 A사의 태도를 보건대 결코 짧은 싸움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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