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가현 노동활동가

사람보다 자전거를 더 많이 봤던 여행. 덴마크 코펜하겐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코펜하겐에 도착해 숙소까지 걸어가며 가장 많이 눈에 띈 건 잘 정리돼 비치된 많은 자전거였다. 자전거를 타기 좋은 거리 환경, 자전거에 짐을 싣고 아이를 태우고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 공원과 산책로, 수영장, 도서관 등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휴식공간들이 인상적이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여기 살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는 코펜하겐의 노동자박물관(Arbejdermuseet)에 다녀왔다. 187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경찰의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마음 편하게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모였다. 노동자의 기부금을 모아 1879년 노동자를 위한 커뮤니티센터를 지었다. 이곳은 노동조합의 회의와 집회, 사회민주당 행사, 콘서트, 강의, 노동계급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노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리기도 했고, 노동조합의 사무실로도 사용했다. 박물관은 이 공간의 의미를 ‘국가의 탄압도 노동자를 막을 수 없다’는, ‘단결을 위한 노동자의 의지와 힘을 보여주는’, ‘승리의 경험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설명한다.

이 건물은 1983년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박물관 전시는 ‘1900년대 노동자 계층의 평범한 삶’ ‘산업혁명 초기부터 현재까지 150년간의 덴마크 노동운동의 역사’ ‘산업의 발전과 노동운동의 역할’이라는 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도서관도 있으며, 노동운동에 관련한 기록물을 보관하는 역할도 한다.

출입 층 한편에는 아이들을 위한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일찍이 일하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아이들의 삶을 재현한 이곳은, 아이들과 조부모 세대의 소통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박물관 관람객들은 당시 아이들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일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일자리를 위해 공장이 있는 도시로 온 가족이 사는 작은 임대주택의 모습, 놀 공간이 없어 마당과 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 동생을 돌보고 설거지하고 심부름하고 우유를 배달하고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족 단위의 관람객도 많이 있었는데, 자녀와 기념관 한쪽 코너에 꾸며진 식료품점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역할 놀이를 하는 가족들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직업의 모습을 보며 노동자의 의미에 대해, 노동운동가 출신 덴마크 총리였던 토르발 스타우닝의 사무실 모습을 보며 정치에 대해, 붉은 깃발을 보며 노동조합에 대해, 1930년대 경제위기로 실업에 처한 사람들이 눈을 치우는 공공일자리를 얻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을 보며 국가와 정책의 역할에 대해 아이들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박물관에서 공을 많이 들인 전시 중 하나는 1900년대 코펜하겐에서 살았던 노동자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다. 1915년 고향을 떠나 공장 일자리가 있는 도시인 코펜하겐으로 온 가족들 삶의 모습부터, 1950년대에 가사노동을 하는 아내와 임금노동을 하는 남편이라는 성별 분업을 보여주는 당시의 시대 모습(여성은 가사노동을 하는 동시에 집에 작은 미용실을 차려 돈도 벌어야 하는 이중부담에 처했다), 일주일 중 6일 내내 하루 10~12시간의 근무를 하고 남은 하루 동안 가족들과 휴일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식사를 했는지를 보면서 당시 노동자들의 삶과 지금의 삶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두 번째는 덴마크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1871년 덴마크 국제노동자협회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10년대 노동조합의 모습까지, 덴마크의 대중 공동체로서 150년간의 노동운동 역사를 보여준다. 이 전시는 노동조합 총회가 열리곤 했던 메인 연회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메인 연회장에는 여성노동조합 깃발을 비롯한 사회민주당 깃발이 쭉 걸려 있고, 벽에는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나무로 조각돼 있다. 연회장과 전시를 보며, 박물관은 노동운동의 ‘자부심’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었다. 박물관은 노동조합이 현재의 복지국가를 형성을 이끌었고, 노동자의 단결로 노동운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는 산업 발전에 대한 전시 공간이다. 산업의 발전을 이끈 건 노동자와 노동조합이었다는 것이 이 전시의 핵심이다. 동일임금을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 단체교섭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질임금을 인상하고, 여가를 갖게 되고, 연금을 만들어 낸 건 우리다’는 자부심을 드러낸다. 인상 깊었던 내용 중 하나는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것이다. 1880년대 빵 가격의 급격한 상승으로 협동조합 빵집을 운영해 저렴한 가격으로 빵을 판매하고 내부적으로는 조금 더 나은 노동조건을 시도하는 것에서 시작해 맥주·우유·상점·미용실을 비롯해 주택·은행·보험까지 넓혀 나갔다. 많은 협동조합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현재에도 일부 주택과 보험, 은행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이들이 느끼고 있는 많은 자부심 중 하나다.

오전에 노동자박물관을 다녀오고, 오후에는 코펜하겐에서 열린 퀴어 축제에 참여했다. 군인·경찰·소방관·구급대원 등 공공서비스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본인들의 직업을 나타내는 옷을 입고 프라이드(Pride) 깃발을 드는 모습을 보았다. 덴마크 노동조합총연맹을 비롯한 여러 노동조합들은 ‘모든 사람은 좋은 직장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문구와 함께 행진에 참석했다. 노동운동의 ‘자부심’을 엿본 하루였다.

노동활동가 (bethemi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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