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주요 흐름으로 자리 잡은 자회사 모델이 애초 정부 의도와는 큰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꼼수 정규직화’라던 일각의 비판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모·자회사가 노사공동협의회를 설치하고 자회사 근로자대표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기관은 86곳 중 31곳에 그쳤고, 설치·운영 규정을 마련한 기관은 21곳에 불과했다. 일부 공공기관은 용역수행 중 결원이 발생하면 위탁수수료를 감액하는 등 여전히 용역사 수준의 위수탁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 <매일노동뉴스>는 고용노동부가 최근 공개한 ‘2021년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보고서’와 이를 분석한 공공노련의 보고서를 참고해 정규직 전환용 자회사 실태를 확인했다. 정부는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안’을 기초로 비정규직을 자회사로 전환한 모기관 86곳을 대상으로 조사해 평가보고서를 지난 4월 마련하고 지난달 9일 공개했다. 연맹에는 평가 대상 86곳 중 대부분 기관이 속해 있다.

노사공동협의회 규정 마련 21곳 그쳐
자회사 노동자 교체 요구하고 재채용 금지

눈에 띄는 대목은 모·자회사 관계가 여전히 용역사 시절의 불평등한 관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부실했다. 노사공동협의회 운영이 대표적이다. 86곳 가운데 31곳만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모·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 설치·운영 규정을 마련한 기관은 21곳으로 더 적었다. 근로자대표 선출 절차나 근로자대표의 임기, 변경·교체가 명확하지 않아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또 운영규정을 마련한 기관도 실제로 개최한 횟수는 연 1~2회에 그쳤다.

2020년 평가에서 부정적 평가가 많았던 공정계약 체결은 다소 개선됐다. 정부는 “부당·불공정 조항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게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다만 용역사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불공정 계약 관행은 여전했다. 연맹 분석에 따르면 일부 모기관은 자회사 노동자를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교체 대상자를 자회사가 재채용하는 것조차 금지한 계약을 체결했다. 노사분규가 발생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도록 한 곳도 있다. 또 자회사 노동자의 구체적인 인력사항이나 근로계약서를 제출하도록 한 조항도 다수 드러났다.

86곳 가운데 68곳이 모·자회사 간 경영협약을 체결했지만 내용은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연맹은 “형식상 경영협약을 체결했지만 세부내용에서 모기관의 자회사 지원이나 노동자 처우개선 실행력이 모호했고, 자회사 업무에 필요한 시설 이관이 부족한 사례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태호 연맹 희망노조 위원장은 “용역사 시절의 불평등한 계약 관행이 남아 있고, 노사공동협의회 운영이 형식적인 수준”이라며 “일부 기관의 불공정계약 내용을 보면 공동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노사공동협의회 같은 제도는 단순히 모·자회사 노사가 함께 모인다는 의미 이상을 갖는다. 모기관과 자회사 관계가 위수탁계약을 기반으로 한 사실상의 종속관계다 보니 자회사 노동자 처우개선은 결국 모기관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노사공동협의회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 원·하청 노동자 이중구조 문제가 공공부문에서 발생할 우려가 크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됐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모기관 노조의 각성이 요구된다”며 “일정한 규모와 교섭력을 갖춘 모기관 노조가 자회사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자회사 운영개선을 위한 공동의 대화에 적극성을 띠고 모기관을 견인해야 미래에 다시 닥칠지 모르는 공공부문 노동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수탁계약 쪼개기 개선했지만
노무비 깎아 낙찰률 높이는 편법 여전

모기관의 자회사 운영 지원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정부는 ‘자회사의 안정적 기반 마련’ 부문을 평가하면서 자회사 설립의 법적 근거와 설비 이관, 모기관 사업이관 같은 항목을 다뤘다. 평가 결과 86곳 가운데 45곳은 법령에 자회사 설립 근거를 마련했다. 자회사 정관에 위탁업무 내용을 기재한 사례는 76곳이다. 모기관 성격에 따라 자회사 자본금은 차이가 컸지만 대체로 최소자본금과 초기 운영자금을 고려해 자금을 출자했고, 자회사 이윤을 사내에 유보하도록 해 재무건전성 확보 방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회사 경영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계약관행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소나 경비·시설관리처럼 각각의 위탁업무에 따라 잘게 쪼개 위수탁계약을 체결하는 관례를 단일통합계약으로 전환한 곳은 61곳으로 개선이 뚜렷했다. 그러나 계약을 여전히 복수로 하는 곳이 17곳, 아예 과거 용역시절처럼 잘게 쪼갠 위수탁계약 체계를 유지한 곳이 8곳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17곳 중 1곳을 제외하면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계약금액 책정 기준은 여전히 문제다. 86곳 가운데 시중노임단가를 100% 적용한 곳은 39곳에 불과했다. 게다가 낙찰률 100%를 적용하더라도 노무비 산출시 이미 낙찰률을 미리 반영한 곳도 있었다. 낙찰률에 해당하는 규모로 노무비를 삭감해 낙찰률을 높이는 편법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전히 낙찰률을 기반으로 하는 위수탁계약이 모·자회사 계약의 원형이라는 점이다. 정 교수는 “용역사 시절 위수탁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체계를 넘어 아예 자회사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예산심의제 도입의 필요성이 계속 강조됐지만 여전히 확산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예산심의제는 모기관이 정부부처에서 예산을 받듯이 자회사가 모기관에서 예산을 교부받는 형태다. 사업과 계약을 기반으로 하는 위수탁관계보다 안정적이고 자회사 노동자의 처우개선이나 자회사 자체의 발전적 운영에 열쇠가 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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