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판결이 잘 나왔는데요” 사무국장의 말에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된 현대모비스 통상임금 사건 판결에 대해서였다. 사실상 전부 승소라는 말에 더해서 판결 내용이 좋다며 사무국장은 전화로 내게 이렇게 말한 거였다. 판결 결과와 판결 이유가 잘 나왔다고 수많은 판결을 받는 법률사무소에서 새삼스레 놀란 말투로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판결이 잘 나왔다고 사무국장이 강조해서 말했던 것은 이 사건 판결 선고를 앞두고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변론 기간이 길었어도 피고 사측으로부터 급여자료 등을 제출받아서 청구금액을 계산하고 이를 피고측의 검토를 받아 청구취지 변경 신청했더니 재판장은 변론절차를 종결하겠다면서 선고일자를 통보했다. 마지막 변론기일 직전에 피고는 준비서면에서 느닷없이 상여 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자는 지급하지 않도록 급여규정을 개정했다며 이를 을호증으로 제출한 터라 원고 대표에게 연락해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니 변론절차를 종결하겠다는 재판장의 말에 급여규정 개정 내용에 대해 검토 중이라서 한 기일 속행해 줄 것을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재판을 마쳤으니 재판 진행에 불만이 없을 수 없었고 재판 결과도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현대모비스 사건 판결 결과에 나는 크게 안도하면서 기뻤다. 그런데 판결 내용이 좋다니 판결문을 메일로 받아서 읽어봤다.

“최초의 법원판결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기준 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시 정기상여금의 지급 제외 조건에 대해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는 법원판결이 나온 걸 본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나는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에 대해서는 서울고법이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세아베스틸 사건은 내가 원고들 소송대리인으로 진행하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판결을 잘 알고 있다. 세아베스틸 사건에 대한 서울고법의 판결 선고가 있고 나서 몇 개 사건에서 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원판결이 나왔다. 세아베스틸 사건은 상여금 지급 당시 재직자만 지급하고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것인데, 이번 현대모비스 사건의 경우 회사가 급여규정 개정을 통해서 통상 2개월 단위인 상여 기간 중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초가 아니라도 놀랄 만한 판결이었다.

2. 2개월의 상여 기간 중 휴직·결근 등으로 15일 미만 근무하는 경우에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상여금 지급기준일 전에 중간 퇴직한 자에게 지급하지 않는 재직자 조건과 달리 재직자까지도 해당하는 조건이다. 그만큼 심각한 조건인데, 이걸 2015년 12월31일 급여규정 개정을 통해서 현대모비스에서 도입했다니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는 현대자동차 통상임금 사건이 대표소송 방식으로 법원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현대차 사건에서 주된 쟁점은 정기상여금에 기준 기간 15일 미만 근무시 지급하지 않는다는 지급제외자 조건이었다. 1999년 현대자동차(HMC)·현대자동차써비스(HMS)·현대정공(현대모비스 전신) 통합 전 옛 현대차에서 이런 지급제외자 조건을 두고 있었고 통합 후 그 조건이 유지되고 있었다. 결국 대표소송은 이 조건을 이유로 정기상여금은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법원에서 판결을 받았다. 당시 소송대리인으로서 나는 1심에서부터 반복해서 해당 재판부를 상대로, 이미 제공한 근로에 대한 지급제외자 조건은 근로에 대한 대가 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에 반해서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심 법원부터 고등법원까지 심급을 가리지 않고 지급제외자 조건을 내세워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현대차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당시 대표소송에서 옛 현대자동차써비스의 경우에는 이런 지급제외자 조건이 없었기 때문에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지급제외자 조건이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달리했으니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모비스위원회로 노동자들이 노조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급제외자 조건에 관한 급여규정 개정을 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 상식으로는 당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나 모비스위원회가 이런 급여규정 개정을 용납할 까닭이 없었다.

급여규정은 근로기준 기준 준칙에 관한 회사 규정이라서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 절차로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94조1항 단서). 법적으로는 현대모비스는 당시 노동조합의 동의를 받아서 급여규정을 개정해야 했다. 만약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급여규정을 개정한 것이라면 그 개정된 급여규정은 당시 재직자에게는 유효하게 적용할 수가 없고, 개정 전 급여규정이 적용되게 된다는 것이 확고한 판례 법리이다. 그러니 당시 재직자들이 원고라서 나는 원고 대표에게 당시 노조가 개정에 동의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변론절차가 종결되고서 판결 선고를 앞두고 당시 개정 사실조차 통보받은 적이 없다는 노조간부들의 진술서와 모비스위원회의 공문을 원고 대표로부터 전달받았다. 나는 참고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3. “기본급과 마찬가지로 소정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에 대한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서 당연히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 즉 근로의 대가에 해당하고, 그 지급 기간이 수개월 단위인 경우에도 이는 근로의 대가를 수개월간 누적해 후불하는 것에 불과하다” “15일 미만 근무한 근로자에게는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까지도 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것은 근로제공의 대가로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으로 지급제외자 조건은 근로기준법에 반해서 무효다. 이것은 내가 16년 전에 썼던 통상임금 논문을 인용해 온 것이 아니다. 이번 법원 판결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16년 전부터 줄기차게 해 왔던 내 주장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특히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에서 갑을오토텍 사건을 통상임금 사건에 관한 대표사건으로 공개변론까지 진행하면서 심리했을 당시에도 나는 원고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으로서 위와 동일한 내용으로 준비서면을 작성해 제출하고 구두로 공개변론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내 기대와 달리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고 중간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재직자 조건의 임금에 대해, 일정 근무일수 미만시 지급하지 않는 임금에 대해 고정성이 결여됐다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 뒤 각급 법원에서 재직자 조건의 정기상여금에 대해 일정 근무 미만 지급제외 조건의 임금에 대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세아베스틸의 정기상여금사건에서 재직자 조건이 무효라며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서울고법 판결이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일정 근무일수 미만 지급제외 조건에 대해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이번 현대모비스 사건에서 판결한 것이니 그 판결문을 읽고서 사실 나도 놀랐다.

4.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사건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되고서 재직자 조건과 일정근무 미만 지급제외자 조건의 경우에는 고정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돼 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인 2014년 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상임금 지침은 대법원 판결 해설에 더해 사용자들로 하여금 재직자 조건과 일정 근무 미만 지급제외자 조건으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정기상여금을 포함해서 각종 수당 등 임금에 이러한 조건을 부가했다.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대단한 의미를 갖는다고 평가할 수 있었지만, 이런 점 때문에 사실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리는 여전히 미흡한 것이었다. 그 뒤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의 법적 투쟁은 당연히 이러한 미흡한 판례 법리의 부당성을 주장해서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아베스틸 사건에서 서울고법이 재직자 조건에 관해, 이번 현대모비스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일정 근무 미만 지급제외자 조건에 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미완이었던 부분을 완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통상임금에 관한 노동자 권리로 보자면, 여전히 미완이다. 판례로 확고하게 정리돼서 더는 최초로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아직 대법원 판례로 정리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용자로부터 재직자 조건과 지급제외자 조건으로 상여금, 각종 수당 등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취급을 받고 있다. 이번 현대모비스 사건 판결이 한 바탕 소동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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