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아유 대표

1987년 재현

시간도 역사도 연속적 흐름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몇 년 단위로 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중요한 계기들을 중심으로 저장된다.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다 보면 미세한 것도 되살아난다. 그래서 중요한 변화들이 있었던 10년 단위로 얘기해 보자.

시작은 1987년이다. 민주와 독재라는 대립이 시대를 가르는 기준이었다. 이 시대에 남한에 확산한 계급이론은 자본가를 타도하려는 혁명운동을 촉진했다. 노조는 시대를 갈랐던 민주와 독재라는 기준을 민주노조 대 어용노조 구도로 드러냈다. 1987년 이후 10년은 6월항쟁에 이은 노동자 대투쟁에서 출발해 1996년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시작도 끝도 강렬한 투쟁이 일어난 시기다.

87년 체제는 추억이 아니다. 그 시대를 다시 실현하려는 ‘재현’의 몸부림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1987>을 비롯해 <헌트> 등 그 시대를 반영한 문화 콘텐츠도 있다. 민주노조는 ‘민주 대 어용’이라는 대립각을 아직 사용한다. 정치에서도 ‘민주화세력’이니 ‘586세대’와 같은 이름으로 그 시대에 붙잡혀 있다. 민주노총은 ‘뻥파업’이 될지라도 매년 총파업을 외치며 대투쟁을 다시 보여주려는 ‘87년 재현’에 집착한다. 시대는 한참 변했고 재현은 성공할 수 없다.

1997년 연장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자는 눈에 띄게 갈라졌다. 살아남은 재벌은 더 강해지고 망한 재벌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실업의 늪에 빠졌다. 구조조정을 거친 대기업에서 버텨 낸 노동자는 정규직의 상징으로 남고, 잘리거나 밀려난 노동자들은 불안정 노동의 세계를 살게 됐다.

구조조정에 맞선 대기업 노동자 투쟁도 격렬했다. 나도 구조조정에 맞선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과 싸웠다. 이 시기에 등장한 비정규직 투쟁도 격했다. 분신과 고공농성들이 일어났다. 비록 모습은 과거처럼 전투적이지만 내용은 달랐다. 체제와 자본에 대한 적개심 대신 정규직은 기득권을 위해서 싸웠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한 선망과 원망을 품고 싸웠다. 원망은 ‘정규직 개새끼론’으로 험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97년 체제 잔재는 이어진다. 계급 내부 갈등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가한 폭력으로 나타났다. 광주 캐리어, 울산 현대중공업, 경기도 기아자동차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한참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는 정규직화를 원하는 비정규직과 이에 반대하는 정규직의 갈등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반복했다. 2022년에는 대우조선소에서 비정규직이 투쟁할 때, 정규직과 충돌이 일어났다. 실패했지만 정규직의 민주노총 탈퇴 시도가 나타났다.

2007년 몰락

자본주의는 주저앉았다. 금융위기는 2008년 폭발했지만 한 해 전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세계적 금융위기 여파는 한국에서 다소 약했다. 외환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외환보유고를 높이는 등 완충장치가 있어 여러모로 느낌이 덜했다. 그러나 위기는 약자에 대한 수탈을 강화한다. 금융위기는 97년 체제가 악화한 모습으로 반복했다.

자본주의의 몰락과 함께 무너진 노동운동을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2009년 쌍용차 투쟁이다. 이를 노동계급의 영웅적 투쟁으로 칭송하던 이들도 있었다. 다른 경로를 말하면 “내부의 적”으로 낙인찍었다. 하나, 둘, 셋, 열, 스물, 서른…. 그 영웅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3년이 지난 두어 달 전, 손해배상액에 이자가 붙어 100억원을 훌쩍 넘었다고 들었다. “영웅적 투쟁”으로 칭송하던 이들은 어떤 책임을 함께 나눴을까. 지난달 30일,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동료를 끝까지 지켰던 그들의 “손배가압류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목소리에 미칠 것 같은 밤을 보냈다.

2007년 자본주의 실패가 드러난 금융위기에도 이를 극복할 계급운동은 약했다. 계층운동에 빠진 계급운동은 2010년대에 들어서 청년 세대론을 만난다. 계급운동은 계층운동과 세대론이라는 이중장벽에 포위되고 있었다.

2017년 미완

기회가 왔다. 권력의 폭력을 넘어설 압도적 참여로 평화적 봉기가 펼쳐졌다. 탄핵 촛불이 전국을 뒤덮은 광경을 1987년 재현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 대투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날아다니며 독재 타도로 내달리던 1987년과 달리, 적폐에 대한 적개심보다 극복 의지가 더 컸다.

그 후 대투쟁 재현도, 사회적 대화도 이끌지 못한 민주노총은 정권 비판의 날만 세우려 애쓰는 것으로 보였다. 87세대의 권력 ‘타도’ 관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내부 논란에 휩싸였고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곤두박질쳤으며 ‘인국공’ 사례처럼 정규직화 원칙을 외치다 정규-비정규직 계급 분열을 확인했다. 민주노조는 여전히 97년 체제의 연장 속에 있다.

운동과 정치는 법원이 흡수했다. 하청노동자의 불법파견 소송은 물론 대기업 정규직도 통상임금 소송을 해 왔다. 법원은 관계의 막장이다. 교섭이나 정치가 무너지면 법원으로 간다. 새 정치는 등장하지 못한다. 87년 ‘독재 타도’는 2017년 ‘적폐 청산’으로 변형돼 나타났다. 그 방법은 토론을 통한 숙의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으로 누르고 사법적으로 단죄하는 방식이다. 운동과 정치의 사법화는 칼을 휘두르는 검사의 권력을 키웠고 검객이 대통령이 됐다. 우리가 만든 결과다.

새로운 경로

지침을 벗어난 한 대기업의 노조는 총파업 전에 단체교섭을 합의했다. 산별노조는 불승인했다. 2020년에도 그랬다. 시간 지나면 위원장 도장을 슬그머니 찍어 준다. 대기업 노조가 나쁠까, 획일적 지침이 무너진 현실을 담아 내지 못하는 산별노조가 문제일까. ‘획일적 통일’에서 벗어난 ‘다양한 통합’이 필요하다. 다양한 대중이 모인 노조는 특정 정파를 초월한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갈등 해결 역량을 잃은 노조는 내부 사법기관인 징계위원회로 안건을 넘긴다. 사법화된 노조의 한 단면이다. 일당독재 근거였던 민주집중제를 버리고 ‘숙의민주주의’로 바꿔야 한다. 올해 총파업 지침을 따른 조합원이 얼마나 될까. ‘지침 중심 투쟁’에서 ‘합의 중심 투쟁’을 착실히 쌓아야 한다. 조합원과 떨어진 노조 상층기구는 자기 입맛대로 결정하는 정파 놀이터가 되기 십상이다. 현장과 전국의 ‘공식적·수평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2017년 이후 탄생한 몇 가지 노조 사례를 보자. ‘공동성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조는 총력투쟁이나 총파업이라는 용어를 잘 쓰지 않는다. 순한 맛, 매운맛, 아주 매운맛 행동으로 표현한다. 계열사 하청노동자와 노조를 함께한다. 계층상승을 위한 정규직화를 요구하지 않고 옆을 보며 전국으로 연대를 확장해 권리를 높여 온 노조도 있다. 공급사슬을 따라 전국에 노조를 만들고 다른 경로를 개척한 것이다. 옛것을 반복하려는 구(舊)재현씨가 보면 일탈이다. 다양한 경로를 개척하려는 신(新)경로씨 눈에는 새 비전이다. 다양한 경로를 가질 때 노동시민은 풍부하고 강해진다.

87년 재현과 97년 연장, 2017년 미완은 신경로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체제 전환을 주장하는 사회단체인 ‘기후정의동맹’도 등장했다. 기후정의 옷만 입는다고 구재현이 신경로가 될 순 없다. 발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새 비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선이 다른 곳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젠 구재현을 보내고 신경로를 만나자.

아유 대표 (jogj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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