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헌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장이 29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대우조선 분리매각 반대 기자설명회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금속노동자들이 대우조선해양 분리매각은 산업정책 관점이 아니라 ‘매각을 위한 매각’이라며 반대했다. 조선산업의 미래 전망과 현재 영향을 고려할 때 매각을 하더라도 국내 자본에 통매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노조사무실에서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 관련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산은 “대우조선 공적자금, 세금 아닌 시중자금”

대우조선해양 매각의 배경은 우선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이다. 지난 21년간 11조8천억원이 투입됐다고 이야기된다.

그렇지만 내막은 좀 다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된 산은 자금은 4조2천억원이고 투입에 예비한, 일종의 마이너스통장 개념으로 보유한 예산이 2조9천억원”이라며 “시중에서 이야기하는 11조8천억원은 2016년 출자전환으로 해소된 액수까지 포함한 표현으로 적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출자전환은 금융기관이 기업에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2016년 출자전환 직후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지분은 49.74%에서 79.04%로 치솟았다.

공적자금이라는 말도 해석이 분분하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한 게 아니라 산은이 조달한 시중자금이라 세금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 자금이 투입됐으니 ‘공적’이라는 표현도 가능하지만, ‘혈세’와는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재무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송덕용 공인회계사(회계법인 공감)는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적자가 발생했지만 현재 수주잔량이 남아 있고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것도 아니어서 단기적으로 자금을 더 투입해야 할 요인은 없다”며 “산은이 보수적으로 작성한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안을 보더라도 매출 7조~7조5천억원가량을 유지하면 이익이 난다고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물가 상승으로 정상화안 작성 당시와 비교하면 매출목표를 1조5천억원가량 상향해도 추가 투입 필요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혈세낭비에 따른 매각’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다.

국내 조선산업, 높은 이익 적은 판매 전략 취할 때

또 다른 배경은 산업 구조조정이다.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빅3(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를 빅2 체제로 개편할 계획을 세웠다. 바통을 이어받은 강석훈 산은 회장도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선산업 전체 경쟁력 제고와 구조조정이라는 틀 내에서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산업동향은 어떨까. 업계에서는 향후 2030년까지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태정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2016년 이후 선박 발주량이 컨테이너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중심으로 증가해 지난해 4천6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로 최대였다”며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최소 2030년까지 연간 3천500만~4천만CGT의 안정적 발주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2018년 세계 점유율 1위를 달성한 뒤 감소하고 있다. 지난 불황기에 국내 중형 조선소가 몰락하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발주량이 많은 벌크선을 생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벌크선이란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그대로 실을 수 있는 화물전용선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점유율 감소가 업계 불황을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나라는 고가인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과 LNG선 수주에 주력하고 있다.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가 화물선의 환경규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중국·일본보다 기술이 좋은 우리나라가 친환경 선박 수주에도 유리하다. 노조는 ‘후리소매(厚利少賣)’ 전략을 강조했다. 적게 팔아도 충분한 이익을 내는 전략이다. 김 국장은 “벤츠를 만들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특수선 남기고 상선 매각?
급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이 외국자본에 팔리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기술유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앞서 쌍용자동차와 하이닉스의 아픈 경험이 있다”며 “대우조선해양을 외국자본에 매각하면 같은 비극이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산업 지적재산권을 3천879건이나 보유한 세계적인 기술 보유기업이다.

그렇다면 국내자본을 물색해야 하는데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은 이미 유럽연합(EU)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불승인돼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삼성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시 LNG선 점유율이 과점(50%)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국내 제3 자본에 매각하는 방법이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자꾸 분리매각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산은의 의뢰를 받아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경영컨설팅 보고서도 분리매각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석훈 회장도 국회에서 “분리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분리 대상은 특수선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매출의 15%가량을 해양 구조물과 잠수함 같은 특수선 분야에서 내고 있다. 특수선은 국내 방위산업과도 연결된 분야다. 정부로서는 국방력 문제 때문에 특수선을 외국자본에 넘겨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내자본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을 한꺼번에 인수하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특수선을 따로 떼어 국내자본에 매각하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이다. 특수선은 국내 기업에 주고, 상선을 국외 기업에 매각해 매각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특수선과 상선을 구분하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상 분리는 사실 불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은 선박건조를 위한 자재수급과 가공이 일원화돼 있다. 갑판에 가져다 쓸 철판을 특수선 따로, 상선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루아침에 자본이 달라졌다고 이를 앞선 공정부터 구분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상헌 노조 대우조선해양지회장은 “몸으로 따지면 특수선이냐 상선이냐는 손끝, 발끝의 차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자들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진영 내 반대가 없지는 않지만 노조와 지회는 21년간 지속된 산은 체제 졸업을 위한 매각도 인정한다. 다만 산업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조는 이를 위해 △동종사(조선업) 매각 반대 △분리매각 반대 △해외매각 반대 △투기자본(사모펀드 등) 참여 반대 △당사자(노조) 참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상헌 지회장은 “분리매각이 아니라 통매각을 해서 주인을 찾는 것이 산업적으로, 국가적으로 올바른 매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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