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시행령 정치(政治)’가 논란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부처 홈페이지 보도자료 공지란을 통해 직접 메시지를 전했다. “다수의 힘으로 헌법상 절차를 무시”하고 법안을 통과시킨 입법자들이 ‘(검찰에게) 중요범죄 수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와 속마음’을 가졌지만 정작 법률을 개정하면서 “의도와 속마음조차 관철하지 못하게” 법문을 구성한 것 아니냐고 비웃었다. 그리고 “정부의 기준은 중요범죄를 철저히 수사해서 국민을 범죄피해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장관의 설명(연설)은 “서민 괴롭히는 깡패 수사, 마약 밀매 수사, 보이스피싱 수사, 공직을 이용한 갑질 수사, 무고 수사를 도대체 왜 하지 말아야 합니까”라는 주어도 없고, 질문이 향하는 대상도 알 수 없는 의문문으로 마무리된다.

자기 조직의 행정적 권한을 지키기 위해 이리도 분투하는 공무원들을 보니,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의 시행령 제·개정 주무 부서 공무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법률이 어떻건 시행령을 통해서라도 권력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에 법률에서 이미 위임하고 있는 권한조차 내려놓고 싶어 하는 듯한 노동부 공무원들이 대비된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이 동일체처럼 일치해 있는 검찰 조직을 보면서, 능력을 곧잘 보이던 실무 관료조차도 “언제까지 이 부서에 있을지 모르지만”이라는 이야기부터 깔고 시작하던 산업안전보건 부서의 현실을 생각한다. 물론, 안전보건 주무기관의 소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많은 공직자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일상의 안전이 당연한 상태이자 권리로 여겨질수록 그것이 어떠한 인위적 노력 없이도 성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안전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의 수고는 종종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반면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온갖 비난의 화살을 받는 조직으로서의 고뇌도 공감한다. 그러나 공공제도와 조직은 돌팔매를 맞더라도 문제를 드러내고, 책임과 직무를 자임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자원과 권한의 배분을 요구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 믿는다.

노동부가 열심히 중대재해를 수사하고 있다고 들었다. 본보기로라도 경영책임자 한두 명조차 법정에 세우지 못한다면 받게 될 질타가 두려워서만은 아니길 바란다. 재해의 연원을 살펴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이유를 분석하고 어느 부분에 미리 개입해야 할지 찾는 수사(조사)가 돼야 한다. 파악된 문제지점에 대한 개입은 몇 달이 걸릴지, 이뤄질지도 모를 검사의 기소나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법원의 판결에만 의탁해선 안 된다. 산업안전보건법 53조에 따르면 노동부 장관은 사업주가 사업장의 건설물, 부속건설물 및 기계·설비 등에 대해 안전·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해 노동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해당 기계·설비 등에 대해 사용중지·대체·제거 또는 시설의 개선, 그 밖에 안전 및 보건에 관해 필요한 조치(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다. 노동부 장관은 사업주가 해당 기계·설비 등에 대한 시정조치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유해·위험 상태가 해소 또는 개선되지 않거나 노동자에 대한 유해·위험이 현저히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경우 관련된 작업의 전부 또는 일부의 중지를 명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재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수사(조사)로 확인된 위험과 미비했던 조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시정조치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행정철학의 문제다. 여름 내내 물류센터의 노동자들이 숨 막힐 듯한 더위를 호소하고 쓰러져 가며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열사병은 즉각적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80%가 사망하는 질환이다. 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이 보고한 실내기온과 습도, 더위체감지수(WBGT)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열사병으로 노동자가 사망해야만 ‘현저한’ 위험이 되는 것인지, 시정조치 명령은커녕 노동부가 단 일주일이라도 현장에서 직접 온도와 습도와 WBGT를 측정하고 결과를 공개한 것이라도 본 적이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위험관리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의 온전성 유지라기보다는 이윤손실 가능성을 관리하는 것인데, 매분 매초 마다 이윤이 뚝뚝 떨어질 ‘작업중지 명령’이야 말로 강력한 행정적 무기가 아닌가. 현행 안전·보건법제가 아무리 지시·규제적이라고 해도 법과 규정에서 이야기하는 ‘필요’한 조치, ‘적절’한 조치, ‘현저’한 위험(현저·적절·필요라는 표현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각각 4회·8회·184회, 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는 8회·61회·211회 등장한다)을 적극적으로 판단해 내리는 시정조치 명령과 작업중지 명령을 통해서 관철될 수 있는 개선사항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청룡언월도나 장팔사모라도 장수가 휘두를 생각이 없음을 안다면 두려울 리 없고, 언제든 휘두를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들고만 있어도 가히 위력적이라 할 것이다.

생명·안전권, 노동자 안전보건에 대해 높아진 사회적 인식과 여론을 뒷배 삼아야 한다. 온전한 행정역량을 갖추기까지 질타를 넘어선 응원을 기대하고, 소위 진정한 자율규제(self-regulation)을 지향한다면 노·사·정 공동 모색을 위한 실질적이고 제도화된 논의 구조는 필수적이다. 법의 취지에도 어긋남이 없을진대 부디 노동부가 ‘시행령 정치(定置)’에 야망을 가지고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Be ambitious, M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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