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하경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22. 7. 20. 선고 2021구단51976

1. 사건의 개요

원고는 1995년부터 2015년 11월까지 한국전력공사㈜의 협력업체에서 배전전기원으로 근무하던 중 갑상선암을 진단받았다. 배전전기원으로 근무한 기간 중 18년간은 활선공법을 활용해 전기가 통하고 있는 상태의 전신주에서 송·배전선로의 유지·보수를 하는 무정전작업을 수행했다. 상시적으로 2만2천900V의 특고압 전기가 흐르는 상태에서 초저주파 자기장 등의 전자파에 노출됐고, 감전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채 16미터 높이에서 전기자재 중량물을 옮기는 등의 고난도 작업을 수행하며 강박감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활선공법이란 배전공사 작업 중 정전을 수반하지 않는 무정전 작업의 일종으로, 국내에서는 1995년부터 배전전기원이 직접 충전부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직접활선공법이 널리 이용됐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전기원의 안전을 위해 스틱을 이용한 간접활선공법을 이용하면서 공법과 공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온 것에 비해 국내의 경우 위험부담이 큰 직접활선공법을 적용해 왔다. 때문에 배전전기원들의 안전 문제가 장기간에 걸쳐 지적돼 왔고, 이에 한전은 2017년 이후부터는 직접활선공법을 폐지하고 간접활선공법으로 전환했다.

극저주파 전자기장의 임계노출값 0.2~1μT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암 발생의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한다. 그런데 활선작업자 건강 상태 및 관련 실태조사(2017년)에 따르면, 활선 상태에서 케이블을 교체하거나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배전작업자의 작업환경에서 측정된 극저주파 자기장이 산술평균 1.3μT로 측정됐고, 최고노출 수준 값의 범위는 8.5~1,671μT로 측정됐다. 이는 타 직군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치다.

2. 쟁점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갑상선암의 관련성에 대한 소수의 연구들이 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위험도 증가를 보인 연구는 아직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갑상선암은 내분비계 암 중에서 가장 흔한 암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은 설시를 통해 원고의 업무와 이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업주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보험을 통해서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전통적인 사업 분야에서는 산업재해 발생의 원인이 어느 정도 규명돼 있지만,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작업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이른바 ‘직업병’에 대한 경험적·이론적 연구결과가 없거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첨단산업은 발전속도가 매우 빨라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빈번히 바뀌고 화학물질 그 자체나 작업방식이 영업비밀이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첨단산업 분야의 경우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대책이나 교육 역시 불충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사회보장제도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 보호를 강화함과 동시에 규범적 차원에서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무과실책임을 전제로 한 것으로 기업 등 사업자의 과실 유무를 묻지 않고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을 하되,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분담하기로 한 것이다. 첨단산업 분야에서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질병에 대해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

둘째, 원고가 상당한 농도의 극저주파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됐고 원고와 같이 활선작업을 하는 전기공이 타 직군보다 월등하게 그 노출수준이 높으며 노출 권고 하한을 큰 폭으로 초과하는 점, 극저주파 자기장이 갑상선호르몬수치 등 갑상선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극저주파 자기장의 임계노출값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암 발생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존재하는 점, 핵발전소 폭발 등에서 노출되는 전리방사선은 갑상선암의 대표적인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는데, 극저주파 자기장이 비록 비전리방사선이기는 하나 방사선의 일종으로서 과다 노출되는 경우 갑상선암과의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점, 혈중 갑상선자극호르몬의 경우 그 수치가 증가하면 독립적인 갑상선암의 위험인자로 갑상선암 발암 기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극저주파 자기장에 노출된 그룹에서 혈중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 갑상선자극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켰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원고가 전기원으로 일하면서 극저주파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이 사건 상병 발병에 유해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셋째, 피고는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생과의 인과성에 대해서는 아직 이를 뒷받침할 연구가 부족하고, 타 직종과 비교해 볼 때 전기공 직업군에서 갑상선암이 특이하게 높게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데, 앞서 본 법리에 비춰 보면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다 하더라도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해 증명책임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넷째, 원고의 경우 기저질환이나 가족력·소인 등이 확인되지 않았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순식간에 치명적인 감전 사고를 입을 수 있다는 과도한 스트레스는 그 자체로 질병을 촉발하거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침으로써 질병의 진행을 촉진하는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라 추단할 수 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종래 대법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으로 근로자를 보호할 현실적·규범적 이유가 있는 점,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과 기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근로자에게 발병한 질병이 이른바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질환에 해당하고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발병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소들과 근로자의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현재의 의학과 자연과학 수준에서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바 있다(대법원 2017. 8. 29. 선고 2015두3867 판결 등).

이 사건의 경우 유해요인에 노출된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다툼이 없으나, 오직 역학적 연구결과가 부족해 문제가 됐다. 연구결과가 부족해 논란이 되고 있거나, 아예 관련 연구 자체가 없는 것을 두고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석할 수 없을 뿐더러,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재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위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를 재확인하면서 배전전기원의 업무와 갑상선암 발병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전향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원고가 수행한 직접활선공법을 도입한 국가가 많지 않은 점, 직접활선공법은 치명적인 감전 사고와 전자기파 노출 위험 때문에 공식적으로 2017년 이후부터는 폐지하기로 해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구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다. 이렇게 고밀도 전자파에 노출되는 직업군에 대한 과학적 결과를 도출할 만한 자료 자체가 없는데, 이를 두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고 산재보상보험제도의 취지와 목적에도 반한다. 현재 대상판결에 대해 피고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한 상황인바, 항소심에서도 법원의 적극적인 판단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